조용한 산사.
속세에 있다 산문엘 들어서면 그 고즈넉함에 귀가 멍멍할 정도다.
추녀 끝의 풍경, 이따금 법당에서 들려 오는 경쇠나 목탁소리 염불소리. 해탈교 밑으로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모든 삼라만상이 정지해 있는 산사의 경내에선 茶香도 남다르다.
스님의 방장에 마주앉아 茶를 마신다. 커피에 길들인 내 혀는 그러나 깊은 茶의 오묘한 맛을 모른다. 그저 닝닝하다. 아무렴 어떤가 이 정갈한 고요와 향 산이 주는 기운에 방문자는 그저 행복하다.
스님들은 茶를 좋아한다. 좋아하기를 지나쳐 어느 땐 교만스러워 보일 때도 가끔 있다.
茶는여러 종류가 있다. 우전, 세작, 중작, 대작, 홍차까지....
스님들은 입이 고급이라 우전(雨前)에는 더 환장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우전이란 게 값이 엄청 비싸다. 100g 한 봉지에 10만원 정도 한다. 몇 번 우려먹고 나면 없다. 그런데 스님들은 요걸 참 많이도 갖춰 놓고 마신다. 스스로 즐길뿐더러 이처럼 나그네가 오면 서슴없이 차를 우려 대접한다.
아니다. 대접하기에 앞서 우전차를 자랑하고픈 거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우리 같은 산사의 수도자들은 이토록 깊고 오묘한 고급차를 마시고 있소. 무릇 중생인 당신들은 어쩌다 이런 델 와서 한번씩 맛보는 거요.
나그네는 그저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해 주는 게 예의다.
그런데, 그 값비싼 우전차를 스님들은 어떻게 갖추고 있을까. 사찰 경내에 차나무를 가꾸어 자급자족 덖어서 마시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경우는 거의 없다. 차나무야 저 남쪽 지방에서나 자생하는 식물이니....
올봄 약 두 달 정도 자리산 茶園에서 기거한 적이 있다.
엄청나게 스님들이 다녀갔다. 와서는 그 비싼 우전들을 서슴없이 사갔다.
그리고 그걸 방에 비치해 놓고 그렇게들 폼나게 마시고 있는 것이다.
그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경제활동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 그들이 그 우전차를 쟁여두고 즐기고 있다는 게 나는 열받는다.
결국 신도들, 즉 그들이 중생이라고 부르는 청신사 청신녀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일 게다.
그걸로 폼 잡고 앉아서 깊고 오묘한 茶香을 음미하면서 신도들이 찾아오면 질높은 우전차를 내놓으며 뻐기고들 있는 거다.
그러면서, "수행을 하는 고차원적인 구도자들은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정진하므로 차 한 모금에도 격을 달리한다"는 뭐 그럴 듯한 생각들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믿거나말거나....
정말 뼈를 깎는 수행을 하려면 좀더 질 낮은 차를 마시면 안될까.
어차피 중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불전이라면 좀더 아래로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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