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초록의 茶園에서

어떤 마을

설리숲 2009. 6. 7. 18:43

 

 어김없이 금낭화 마당가에 피었다.

 독특한 생김새에 화려한 빛깔.

 차밭에도 금낭화는 지천이다. 차밭의 그것은 별로 반갑지 않다. 워낙 흔해 빠져서 그 아름다움이 감해지기도 할뿐더러 찻잎을 따면서 자칫 그것까지 훑어내기 일쑤다. 금낭화의 독한 냄새가 차에도 영향을 줄 수가 있음이라.

 

 

 또다시 인연을 맺어 푸른 차를 만들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찻잎은 지나간 날의 그 찻잎이 아니고 사람 역시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올해는 어떤 사람들과 겨릅을 엮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나는 늘 설레는 것이다.


 

 

 

 기존 멤버 삼명 쌤, 영근 씨, 정미 씨.

 일년이나 지나야 만나는 분들이지만, 게다가 작년엔 지나갔으니 2년이나 된 만남이지만 바로 어제 본 듯 그저 푸근하다. 

 짧은 인연 현무거사님, 임채규 씨.

 차(茶)보다는 차(車)에 편집증적인 집착을 보인 독특한 캐릭터 재석 씨.

  스스럼없이 오라버니 또는 오빠라고 부르며 정다움을 표시해 주던 이쁜 여동생들 한수정, 이현옥, 윤별.

 임채규 씨와 재석 씨, 영근 씨는 모두 나와 동갑인데도 다들 아저씨고 유독 나만 형이나 오빠라고 불렸다. 내 동안(童顔)이 아직은 먹히고 있나 보다.

 윤별 이 친구는 정말 할 말이 많다. 아마 언제 기회가 있으면 별이 얘기만 써도 엄청 분량이 많음직 하지만 아무튼 참 멋진 아가씨다.

 요즘 아이들이랑 다르게 듬직하고 순수한 청년 준규, 그 피앙세 수연이.

 덕분에 평균연령이 훨씬 낮아졌다는...

 호민 씨 복임 씨 자매.

 한창 힘들고 어려운 때에 짜잔하고 나타나서 덕분에 한결 손쉬운 날들을 보냈다. 별이와 나와 더불어 F4의 멤버로 대활약(?)했다.

 천 선생님.

 늘 변함없는 정신적으로 기대고 싶은... 새 오카리나를 선물해 주셨다. 늘 정성 가득한 선물을 받기만 했지 내가 드린 건 하나도 없다. 올해는 어쩐 일이지 쌤의 대금소리가 한번도 안 들렸다.

 권 선생님.

 불의의 화상을 입었다. 다행히 경미한 사고였고 그게 액땜이었는가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시즌을 마쳤다. 나는 파이어맨(Fireman)이었다. 불을 끄는 파이어맨이 아니라 불을 붙이는 파이어맨이었다. 선생님의 그 경고성 사고로 말미암아 나는 조심스럽고 안전하게 불을 다루는데 최선을 다했다.

 식사를 준비해 주신 보살님.

 자꾸만 연로해지는 게 보인다. 청력이 약해지셔서 당신도 답답하고 우리도 답답하고. 부디 건강해지시기를.

 

 

 

 얼굴 한번 볼 기회는 없어도 늘 함께 한 분들.

 험한 비탈을 위태하게 딛고서는 하루 종일 뙤약볕에 그을리며 찻잎을 따 들여보내신 여러 아지매들.

 필시 5시 전에 일어났을 것이 짐작된다. 가족을 위해 집안일 하고 아침을 짓고 그 이른 시간에 차밭에 나오셨을 것이다. 본인은 조반을 자셨는지 어땠는지.

 차밭의 풍경은 아름답고 목가적이다. 막상 그 안의 사람들의 하루는 고단하고 척박하다.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 또한 귀한 찻잎을 공급해 주셨다.

 

 한 잔의 차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땀과 애환이 우려낸 것임을. 우리는 늘상 누군가에게 지고한 감사의 마음을 지녀야 함을.

 

 

 

 

 

 그리고 내 친구들 난희 씨, 유정 씨, 은주 씨.

 날 보러 멀리서 찾아 왔건만 함께 놀아주지 못한 내 여건으로 일만 하고 갔다. 그래도 오래도록 남을 추억을 만들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날이 진 어두운 길을 걸으면서 유정 씨는 도종환의 시 <어떤 마을>을 이야기해 주고는 바로 이곳이 그 마을인 것 같다며 총총 별 바짝이는 하늘을 쳐다보았었다.

 

 그밖에 안정이 있거나 초면인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이 한 잔에 많은 노고와 애환이 들어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거늘 수많은 날들을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부대낀 그 엄청난 영겁의 연은 어쩔꼬.

 하루를 살아도 진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픈 우리의 소박한 바람이려오.

 몸은 떨어져도 그해 그곳서 함께 살 부비고 마음 보듬었던 인연들이 있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신의 가피가 있기를...

 

 

 

 

 

 

 나는 차보다 우선은 이 금낭화가 그립곤 했다.

 글쎄 뭐 그리 빼어난 미모는 아니면서도 왜 자꾸만 눈에 밟히는지 모르겠다.

 금낭화의 꽃말이 “당신을 따르렵니다”란다.

 글쎄 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어쨌든 순종적인 그 이미지는 썩 맘에 든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곳 마당가에 금낭화 피었다.

 

 

 

          서지농원 정원에서 덕산 쪽으로 바라본 지리산의 장엄

 

 

 

 고운동을 나오기 며칠 전 부터 뻐꾸기가 울어쌌다.

 봄이 진즉에 끝났다고.

 여름이 왔다고 오후만 되면 가까운 숲정이에서 울어쌌더니만.

 

 아직도 뻐꾸기 그러고 있는지.

 내년에도 금낭화 마당 귀퉁이에 소담하게 피어날까.

 

 

 

                            

도종환 시 한보리 작곡 : 어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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