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깎고 산에 들어간다는 말은 불교에 귀의해 중이 된다는 말이다.
절이나 암자는 산에 있는 것이다. 문학적인 표현으로 산사(山寺)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찰은 산 아니고 어디에도 있다. 마을 가운데 내려와 있기도 하고 조계사처럼 대도시 빌딩 숲 안에 들어앉은 절도 있다. 시방불찰 처처불상이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바닷물 드나드는 해변에도 사찰은 있다.
바다는 영겁의 시간 저쪽 너머로 철썩인다. 그 영원무변의 세계와 함께 하는 수도의 매력도 괜찮을 듯싶다.
머리 깎고 산이 아닌 바다로 가는 수행자들도 있을지니. 이러면 산사가 아니라 해사(海寺)라고 해야 되지만 어째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오래전, 잠시 머물던 공동체마을에 함께 기거하던 사나이가 어느날 떠났다.
늘상 출가하고 싶다고 타령을 하던 남자였다. 떠난다기에 드디어 출가를 하려는가 짐작만 했었다.
그 뒤 나도 공동체를 나왔다.
어느 때인지 계절도 생각이 안 나는 어느 날 낯선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문밖을 나와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닥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얼마나 반갑던지 달려가서 손을 덥석 잡았다.
짧은 해후, 이내 헤어졌다.
머리는 길고 법복도 안 입었지만 행색과 매골은 수행자 같기도 했다.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그냥 서해 쪽이라고만 하고 헤어져 갔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공연히 애잔한 슬픔 같은 게 들어왔다.
그후 그의 일은 전혀 모른다. 나는 그가 서해바다 어느 사찰에라도 있는가 지레짐작했지만 그럴만한 근거도 없는 추측일 뿐이다. 그냥 떠돌아다니는 백수 부랑자일지도 모른다.
망해사 선림사 간월암 등 가끔 서쪽 바닷가 가까운 사찰을 지날 때면 혹시 여기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긴 했지만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다.


1.
여기는 태안반도 바닷가의 안면암.
암자답지 않고 요란스럽게 고급스러운(?) 건축물 몇 개가 덩그러니 서 있다.
도량 특유의 적막과 성스러운 느낌은 없다.
혹 서쪽 바다로 향해 간 그 사내가 이 곳에 있을까, 잠깐 생각이 들어오다 나갔다.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 건 바다 위에 떠 있는 탑이 있어서다.
지도에도 버젓이 표기되어 있는 부상탑이다. 밀물이 들어와 개펄에 가득 차면 물 위에 둥실 부상한다.
보이는 섬은 여우섬이다.
내가 간 것은 간조 때여서 부상탑은 비스듬히 가라앉아 있고 여우섬과 안면암 사이의 개펄은 온통 칠게와 농게, 망둑어가 지천이다.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개펄을 보는 것도 흔하지 않다.
칠게는 사람도 좋아하지만 새도 좋아하고, 특히나 낙지의 주 먹이가 된다고 하니 내 눈에 띄지는 않아도 저 뻘 속에는 무수한 낙지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가까이 가보니 부상탑은 온갖 쓰레기로 귀살머리스럽다.
유명 관광지의 익살인가.







암자의 뜰에도 서서히 가을빛이 물들고 있었다.


2. 철지난 바닷가
고적한 바다를 좋아한다.
인근 안면해수욕장에서 여름과 안녕한다.
철 지난 바다라야 온전한 바다다. 사람이 몰려 북적대고서야 바다라고 할 수 없다.
잔잔하고 쓸쓸한 우주.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청승을 떨고 있는 나라는 인간도 빨리 꺼져 주는 게 옳기는 하다.
내로남불 나 하나야 괜찮지 않아?
온전한 바다를 거닌다. 사람 없는 해변은 참 넓기도 하다.
바람과 함께 가을이 왔다.
지난 주엔 덥더니 이번 주는 춥다.
다음 주엔 눈 내리겠다.
























나도 일요일을 사랑했었죠
바캉스를
아주아주 사랑했었죠
당신 나이에는 그랬더랬죠
그런데 이제
휴일이 별나지도
대수롭지도 않아요
이제 조용한 바다가 좋아요
사방에서 날아온 나뭇잎들이
좌충우돌하다 매미 떼를 따라 휩쓸려 갈
태풍 지난 뒤에나 바다에 가보겠어요
일요일들과 바캉스들을 가라앉힌
바닷가를 찰방찰방 거닐어보겠어요
발가락 새로 바닷물과 모래가 들락거리겠죠
하늘에선 햇빛이 들락거렸으면 좋겠어요
흰 구름 뭉게뭉게 피어올랐으면 좋겠어요
구름의 반그림자 속에서
당신과 만날 수도 있겠죠
황인숙 <철 지난 바닷가>
송창식 : 철 지난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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