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목백일홍이 피었습니다.
달성에 있는 정자 하목정(霞鶩亭)에도 목하 백일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곳은 정열적이라기보다는 청초한 느낌의 꽃송이들입니다.
이 정자에 드러누워 도끼자루 썩는 것 모르고 여름 한 철을 보내고 싶지만
시간은 유수라 긴 여름 낮도 어느새 저물어 땅거미가 밀려옵니다.
내게 더위는 쥐약이지만,
더구나 올해 같은 폭염은 거의 지옥이지만
정열의 배롱나무꽃이 주위에 있어 여름은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름이 ‘백일홍’인만큼 그녀들이 내뿜는 이 황홀한 아우라는 9월까지 세상을 지배할 겁니다.
하롱하롱 마지막 꽃잎이 지는 날은
가을입니다.
내년엔 또 어디로 가서 그들을 만날까 벌써 마음은 그 여름 속으로.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날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이성복 -
Lina Margy 사랑한다 말해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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