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고원의 해바라기

설리숲 2023. 8. 4. 21:53

연일 온열로 사망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폭염의 나날들이다.

내 생애 최악의 대홍수로 참혹했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젠 내 생애 최악의 폭염이다.

세상의 기후가 지나치게 극과 극의 연속이다. 두렵다.

 

해바라기의 계절이다.

성하를 넘어서면서 해바라기가 피면 가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전령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노란 해바라기 평원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고원지대 태백은 벌써 피부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다르다.

아침의 기온이 서늘하다. 조금 더 있으면 난방을 하고 자야겠다는 게 농담이 아니다.

겨울이 일찍 시작되는 강원도 고원지대.

오늘도 나라 전역이 폭염으로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열대야의 이 밤도 역시 고통스럽다.

태백도 낮에는 태양열이 강하게 내리쬐지만 습하고 무더워 죽을 것같은 날씨는 아니다.

 

 

 

여름휴가의 절정이다.

태백 시내의 그 많은 여관 모텔들이 방이 없다. 운 좋게 방을 잡았다. 비싼 숙박료를 지불했다.

우정 해바라기를 보러 간 건 아니다. 다른 곳을 다녀오다 밤이 늦어 태백의 모텔을 잡았고 그런 김에 마침 가까운 구와우마을의 해바라기를 구경할 기회가 되었다.

 

 

 

 

 

 

 

 

 

아침의 공기는 서늘했다.

하늘과 바람이 청량했다. 해바라기 드넓게 펼쳐진 평원으로 햇살이 가득 쏟아졌다.

가을이 멀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알았다.

 

해바라기는 절정은 지난 듯 잎이 조금씩 고드러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노란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멋진 풍광이다.

 

무시로 바람이 쓸고 지나갈 때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꽃송이들은 장관이다.

그럴 때 예전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의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이 감정이 이입된다.

 

 

 

 

 

 

 

 

 

 

 

 

 

 

 

 

 

 

 

 

 

 

 

 

 

 

 

 

 

 

 

 

 

 

 

 

 

          해바라기 

  오래된 메일함을 정리하다
  미처 지우지 못한 아니 지워지지 않은
  당신의 흔적들을 봅니다

​  나 때문에 서성이고
  나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나 때문에 소리 없이 울어야 했던
  착한 해바라기 당신

​  끝내 답신을 받지 못했을 메일들을 보며
  뒤늦게 답장 몇 줄 쓸까 망설이다
  이내 남겨진 상흔들만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  그 두근거림과 떨림은
  이제 화석이 되었어도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한때 더없이 좋은 사람이었을 텐데 ……

​  나 오늘 그때의 당신 그 마음 되어
  지우지 못한
  아니 지워지지 않은 것들을
  아프게 어루만지고 오랫동안 되새깁니다

 

                                       곽효환

 

 

 

 

9월이 오면 호로고루의 해바라기를 보러 가야겠다.

 

 

 

                      포레 : 파반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