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니 잠시 누꿈했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우다. 하늘과 땅이 하나로 맞닿은 듯이 빗줄기들이 빽빽하게 섰다.
한낮인데도 캄캄하고 아득했다.
불암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유정이 전에 내가 올렸던 글을 읽고는 <탈고 안 될 전설>이 생각났다고 한다.
아. 여러분은 생각나시는지.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왔던 유주현의 수필 <탈고 안 될 전설>.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아름답고 투명한 사람과 사랑의 풍경을 눈앞에 보듯 감동적으로 읽었던(실은 우린 그걸 읽은 게 아니고 공부했다).
거기 나오는 것이 남양주 불암사다.
학창시절에 불암사가 궁금했었다. 최불암이 떠올라 킥킥 한번 웃고 수업을 했었다. 궁금하긴 했어도 내 한번 거길 찾아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서야 몹시 가보고 싶어졌다. 불암사가 아닌, 그때 원두막이 있었음 직한 그 어름의 풍경이 보고 싶어졌다. 유정의 한마디가 동기를 불러온 셈이다.
우린 대체로 틀에 박힌 관념에 천착하는 속성을 지닌 것 같다. 송춘희의 노럐 <수덕사의 여승>도 그렇고 일단 비구니, 하면 승려라기보다는 사회에서의 기구한 사연을 지닌 ‘여자’로 인식하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랑과 연애, 실연과 그로 인한 비운 등등.
유주현의 수필도 그것을 기저에 깔고 주인공 여승을 등장시켰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그게 재밌긴 하다.
- 다소곳하게 머리를 숙인 채, 사선(斜線)을 그으며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그의 그윽한 눈매와 표정은, 인간세의 백팔번뇌가 한두 방울 빗물로 용해되고 있는, 해탈의 경지 그대로였다. 그렇게 느꼈다.
나는 원두막 위에서 몸을 구부리고는 한 손을 내려 보냈다. 여승은 주저하지 않았다. 내려온 손을 잡고 몸을 원두막 위로 올린, 손과 손끝의 접촉은 비정적(非情的)일 만큼 싸늘한 촉감을 여운처럼 남겼다. -
위 몇 줄이 수필의 전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을 옮겨 본다.
한편의 영상시를 보는 것 같은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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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고 안 될 전설]
벌써 여러 해 전의 이야기다.
도회 생활에 심신이 피로하여 여름 한 달을 향리에 가서 지낸 일이 있다. 나는 그 때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 나의 생애를 두고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며, 필시 그들은 내 메말라 가는 서정에다 활력의 물을 주는 역할을 내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해 줄 줄로 안다.
향리 노원(蘆院)에는 내 형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물이 맑고 산이 높아, 여름 한철에는 찾아오는 대처(大處) 사람들이 선경(仙境)에 비길 만큼, 그 풍수(風水)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그 여름 한 달을 형의 원두막에서 살았다. 마침 형이 참외와 수박을 많이 심고, 밭둑에는 높직한 원두막을 지어 놓았던 것이다. 그 원두막에서 낮이나 밤이나 외로이 뒹굴며 시장하면 참외를 따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무료하면 공상을 하고, 그것도 시들해지면 원고지에 가벼운 낙서를 하고, 그래도 권태를 느끼면 풀 베는 마을 아이들을 불러 익은 참외 고르기 내기를 해서, 잘 익은 놈을 고른 녀석에게는 잘 익은 놈을, 안 익은 놈을 고른 녀석에게는 씨도 안 여문 참외를 한두 개씩 상으로 안겨 주며 희희낙락,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을 흘렀다.
어느 날인가, 장대비가 몹시 쏟아지는데 뽀얀 우연(雨煙)이 하늘 땅 사이에 꽉 찼다. 줄기차게 퍼붓는 빗발은 열 발자국 앞의 시야를 흐리게 하며 땅을 두드리는 소리는 태초의 음향처럼 사뭇 장엄한 어느 오후였었다.
나는 원두막에 누워서 비몽사몽간을 소요하다가, 빗소리가 너무도 장엄하여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늘과 땅과 공간이 혼연 일체가 된 들판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흐릿한 시야에 들어오는 어떤 물체를 발견하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원두막에서 멀지 않은 밭 언저리로 사람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아 가며, 서두르지 않고 유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여자 한 사람 등에는 분명 바랑을 지고 있었다. 회색 승복이 비에 젖고 있는 작달만한 키의 여승이었다.
나는 흥미에 앞서 경이의 눈으로, 장엄한 자연 앞에 외로이 서 있는 하나의 점(點)을 봤다.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었다. 한 발 두 발 옮기는 걸음이 그대로 태산 같은 안정이고 초연(超然)이었다.
잠시 후, 여승은 발길을 돌려 내가 있는 원두막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잘 생긴 코끝에서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유난히 흰 얼굴과 원만(圓滿)한 턱을 가졌다.
여승은 분명코 원두막 위에서 사람이, 그것도 안경을 쓴 도회풍(都會風)의 젊은 녀석이 내려다보고 있는 줄을 눈치챘으련만, 전연 도외시한 채 서서히 다가와 낙숫물 듣는 처마 밑으로 들어서서 비를 긋는 것이다. 관음보살처럼 보였다. 다소곳하게 머리를 숙인 채, 사선(斜線)을 그으며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그의 그윽한 눈매와 표정은, 인간세의 백팔번뇌가 한두 방울 빗물로 용해되고 있는, 해탈의 경지 그대로였다. 그렇게 느꼈다.
"좀 올라와 쉬시죠. 비가 몹시 쏟아집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래를 보고 말을 걸었다. 여승은 대답도 없이, 고개도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정한 듯, 빗물 떨어지는 웃옷을 후르르 떨고 사다리에 한 발을 걸쳤다. 나는 원두막 위에서 몸을 구부리고는 한 손을 내려 보냈다. 여승은 주저하지 않았다. 내려온 손을 잡고 몸을 원두막 위로 올린, 손과 손끝의 접촉은 비정적(非情的)일 만큼 싸늘한 촉감을 여운처럼 남겼다. 초면의 남녀가 말없이 앉았기란 지극히 부자연스러워 말을 걸어 보았다.
"어느 절에 계신가요?"
"불암사(佛巖寺)에 있습니다."
불암사란, 원두막에서 10리 쯤 떨어진 산 속에 위치한 조그만 절이지만, 내력은 오래 됐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비가 몹시 쏟아집니다. 이런 비를 맞으시고 어딜……."
'그저 거닐었습니다. 하도 장(壯)하게 오시는 비이기에……."
스물 몇쯤이나 될까, 갸름한 얼굴에는 교양미가 깃들여 있고, 흠뻑 젖은 승복은 세련된 여체를 감싸고 있었다.
"불암사에 오신 지는 오래 되셨나요?"
"1년가량 됩니다."
"서울서 오셨군요?"
"……참외가 많이 열렸습니다."
극성스럽게 쏟아지는 빗발이 무성한 덩굴을 마구 헤쳐 놓는 바람에 희끗희끗한 조랑참외가 유난히 드러나 보였다.
나는 이승(尼僧:비구니)이 시장기를 느끼고 있음을 눈치채고, 참외를 한 아름 따다가 깎아 주었다. 여승은 담백하고 솔직한 여자였다.
"좀 시장했어요. 아주 달군요."
첫입을 베어 물며 배시시 웃는데, 이가 고르게 희었다.
잠시 후에 여승은 가 보아야겠다고 일어나더니, 원두막을 내려가 표연(飄然)히 쏟아지는 빗발 속으로 나섰다.
"절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구경 오시지요."
이 대화가 그 여승과 나와의 다시는 기약할 수 없는 작별 인사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우연히도 역시 소낙비가 퍼붓는 저녁나절, 내가 있는 그 원두막을 찾아든 젊은 나그네 하나가 있었다. 서울서 왔다는, 삼십 전후의, 얼굴이 해사한 청년인데, 아깝게도 왼쪽 팔이 하나 없었다.
"이 근처에 혹 절이 없습니까?"
"어느 절을 찾으시는데요?"
"글쎄요, 어느 절이라기보다 여승이 있을 만한 절이 혹 없을는지요?"
나는 문득, 며칠 전에 만난 그 여승의 영상이 머리에 떠올라, 그 젊은이를 유심(有心)히 살펴봤다.
"전장(戰場)에 갔다 오셨군요?"
조심스런 내 물음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4 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딴전을 보는 그의 표정이 퍽은 쓸쓸했다.
"절을 찾으시나요. 아니면 여승을 찾으시나요?"
"둘 다 찾습니다. 여승이 있는 절이 있으면, 필요한 자료나 하나 얻으려고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더 자세히 물어 보았자 생면부지(生面不知)인 나에게 그가 어떤 긴절한 이야기를 해 줄 리도 없을 것이며, 설령 흥미 있는 이야기를 해 준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반갑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며칠 동안 그 여승의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환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 사나이가 그 환상을 깨뜨려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따라서 막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여인에 대한 나의 존경의 염(念)과 연연(戀戀)한 마음이 여지없이 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더할 수 없이 신비스럽고 깨끗하며, 꿈을 먹고 믿음 속에서 사는 여인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요망한 여자가 악의 구렁에서 헤매던 끝에 문득 깨달은 체하는 가면(假面)으로 승복(僧服)을 빌어 입어, 구렁이 같은 육신(肉身)을 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까닭이다.
청년은 참외를 하나 달래서 달게 먹더니, 대가를 치르려고 했다. 그 얼굴을 보니 괴로움을 질겅질겅 씹는 표정이었다. 나는 돈 받기를 가볍게 거절하면서, 그 사나이에게 불암사를 가리켜 주어야 옳을 것인가 아닌가를 곰곰 생각했다. 나는 그의 괴로움을 보며 적의(敵意)를 느끼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요 뒷산에 불암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거기 젊은 여승 한 분이 계시더군요."
젊은이의 얼굴은 꽃구름처럼 밝아지며 생기가 넘쳐 흘렸다. 그는 더 이상 묻는 말 없이 가 버렸다.
잠시 후에 비는 개고 햇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벌써 서녘 하늘에는 저녁놀이 타고 있었다.
이튿날, 황금빛 아침 햇살이 부챗살처럼 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참외밭머리에 사람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제 본 젊은이가, 며칠 전에 만난 여승과 참외밭머리에서 헤어지고 있었다. 승복 차림의 여인은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석상(石像)이 되어 있었다.
별리(別離), 나는 그들의 별리가 어떤 쓰라림을 지닌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진실과 사랑과 참회의 성스러운 자태로 보였다. 나는 그네들이 앞으로 다시 만날는지 안 만날는지는 생각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날까지 그들 남녀의 서글픈 전설을 뇌리(腦裏)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구상(構想)되지 않을 이 전설을 영원히 탈고(脫稿)하지 않을 작정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유주현
폭우가 내리니 움직이기가 만만치가 않았다.
좀 잦아들기를 기다릴 요량으로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세상이 어둑어둑하다.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세차게 내리는 비.
이 수필이 70년대 쓰여진 것이니 그때는 이곳이 한적한 농촌이었을 것이다. 원두막이 있고 들판이 있고 채마밭이 있고.. 지금은 그 낭만적인 전원풍경은 없다.
길가로 과수원들이 더러더러 있는데 아마 이곳이 수필 속의 배경이 아닌가 싶다.
삽시간에 길위로 물이 넘쳐흘렀다. 이렇게 한 시간만 쏟아진다면 큰 사달이 나지 싶었다. 길 위의 물은 내 발목까지 너끈하게 잠겼다.
천지가 개벽하듯 그 요란을 떨고 나서 비는 그쳤다. 일주문에 다다르니 세상은 다시 고요해졌다.
불암사 도량은 특별하게 적을 게 없다. 여느 사찰과 다를 것 없는 흔한 도량이다.
그리고 하나 더 지적할 건 불암사는 비구니 사찰이 아니다.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유주현의 <탈고 안 될 전설>의 또 하나의 오류다. 수필이라긴 보단 수필 형식을 빈 소설이라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불암사의 특징 하나를 발견했다. 대웅전 앞에 전자불전함이 있다. 세상에나, 이젠 부처께 올리는 돈까지 키오스크로 결제하는 맹랑한 시대가 오고 말았다. 혼자 고소하고 말았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도 이건 너무한다 싶다.
내 사견으로는 불가의 탁발의식이 부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탁발의 의미는 공양에 있지만 인욕과 고행에 참 의미가 있는 걸로 안다. 욕됨을 참으며 한 고행의 ‘구걸’로 그 보시의 소중함을 진실로 아는 의미다.
나의 이런 분노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주거문화와 가옥의 구조가 변했다. 탁발이란 걸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이것은 알량한 성냄의 보복 이상은 아니다. 전자불전함을 보고 마음 한 켠에 삿된 마군이 잠시 들어왔었다.
이것도 돈이 필요하다는 광고.
내려오는 길엔 엷은 햇살이 비추고 어디론가 숨었던 생명들이 다시 나왔다.
몹시 습하고 무더운 여름의 저녁나절이었다.
부연 습기 너머로 불암산 이맛전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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