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미인폭포를 찾아 심포협곡 속으로

설리숲 2023. 7. 3. 20:37

 

강원도라 심심산천엔 우리가 모르는 비경들이 많기도 하여라.

너무 높아 기차도 힘들어 스위치백이라는 방법으로 힘겹게 태백산맥을 넘었던 추억이 있었다.

그곳에 깊은 협곡이 있다.

 

심포협곡.

여전히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게 험한 지형이다. 뭐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관에서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어불성설, 낯간지러운 수식어다. ‘그랜드’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지는 아닐 테고. 그랜드캐니언의 모태끝을 떼어다 놓은 정도라 할까.

그래도 어쨌든 강원도에서만 볼 수 있는 심심유곡의 절경이다.

심포협곡은 역암층 지질이 강물에 침식돼 만들어진 협곡으로 현재 그 깊이가 270여 미터라고 한다.

 

이 협곡에 장쾌한 폭포와 신비스런 용소가 있어 거기까지 사람들에게 개방됐다.

 

 

 

 

 

 

 

 

 

골벽을 타고 거의 수직으로 내려간다. 친절하게도 나무데크로 갈을 만들어 놓았다.

이승에서 저 아래 깊은 명부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협곡 가까이에 여래사라는 도량이 있고 이 부근에 도달하면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여래사는 조용한 산사가 아니라 항시 물소리 가득한 사찰이다. 그러고 보면 수행자는 고요함만을 좇는 건 아닌가 보다. 여래사의 승들은 죽어야 고요한 안식에 들겠다.

 

 

 

드디어 숲 사이로 나타나는 폭포.

미인폭포다.

여러 날의 폭우 후라 수량이 많아 참말 장쾌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소리도 웅장하다.

 

 

 

 

 

그러나 이 폭포의 백미는 용소에 담긴 물 색깔이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옥색의 물빛인데 사실은 나도 잔뜩 기대하고 갔다.

 

위 사진은 강원관광재단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이 사진 아니라도 검색해 보면 옥빛 용소가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신비하다.

 

그러나 내가 갔을 때는 비온 후라 워낙 물이 많이 쏟아져 내려 기대했던 옥색의 물빛은 아니었다.

대신 장쾌한 폭포수가 가슴을 뻥 뚫어 준다.

비말이 날려 폭염경보가 내린 날인데도 서늘하게 겉살을 축인다.

 

비경이지만 멍때리기 좋은 곳은 아니다. 한 반나절만 있으면 폭포수소리에 청신경이 둔해질 것 같다.

하늘 한번 올려다보니 가을 같은 새파란 벽공이다. 손바닥만으로 가려지게 좁은, 우리가 다시 올라가야 할 출구다.

 

 

 

 

 

 

 

전설이라는 게 지어내기 나름이지만 여기 미인폭포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다.

 

승천을 앞둔 못 속의 이무기가 어느 날 목욕하러 온 처녀를 보고 그 절세미모에 반하여 청하였지만 처녀가 거절하였다.

상심한 이무기는 처녀를 그리워하다 승천하면서 산을 가르고 물길을 내서 폭포가 만들어졌다고 하며 용소의 물색이 옥빛인 것은 승천한 용이 흘린 눈물이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또다른 이야기는,

세젤예 처자가 있었는데 스스로 자신의 미모를 알아 꼭 백마 탄 왕자를 만날 것을 믿었다. 워낙 출중한 미모의 처자이니 별의별 사내들이 다 껄떡댔다. 돌쇠 김씨아저씨 심메마니 등, 못난 처녀들조차도 돌아보지 않는 하찮은 것들이 집적대니 처자는 안하무인 더 눈이 높아졌다.

 

날 가고 달 가고 여러 해포가 지났는지 드디어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여자는 바로 청년에게 연을 청하였다.

청년은 여자의 얼굴을 보더니 계곡이 무너져 내려라 웃어댔다.

 - 할머니! 할머니는 거울도 안 보세요?

조롱했다.

여자는 용소로 내려가 물거울에 비친 자신이 얼굴을 보고는 층격을 받았다.

물에 비친 것은 다 늙은 쭈그렁 노인네였다. 그 충격으로 폭포에서 몸을 던졌다고.

얼핏 그리스 나르시스 이야기를 베낀 것 같기도 한 이 이야기가 나는 더 재밌다. 용모를 자만하여 사람의 진심을 업신여긴 골 빈 미녀의 말로라는, 그럴듯한 교훈도 들어 있다.

 

 

 

 

 

다시 되돌아 나오는 길은 꽤나 힘들다. 골밑에서 올려다본 손바닥만 한 그 하늘로 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허위단심 깊은 심연의 계곡을 나왔다, 라기보다는 하늘로 올랐다고 하는 게 더 멋스럽다.

문학작품 등에서 ‘심연의 계곡’이란 말을 여러 번 들었더니 이곳이 바로 여기였다!

 

 

 

 

 

 

 

 

옛날에 <금도끼 은도끼>를 듣고 어린 마음에도 의아스러웠다.

산신령이 왜 물속에서 나오지? 산신령이 물에서 사는 사람이 아닌데. 동화의 오류 하나가 못내 불편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몇 커트 만화를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아, 그래서!

 

 

 

우리가 난 곳도 숲이고 우리가 돌아갈 곳도 숲이다.

인간과 뗄 수 없는 숲. 그래서 전설과 동화, 시와 노래 등 숲의 이야기는 여전히 풍성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전에 라디오드라마 <전설 따라 삼천리>가 엄청 인기 있었다.

성우 유기현의 목소리와 함께 흐르던 시그널 음악.

아 이 곡! 하는 사람은 장담하건대 젊은 사람은 아니다.

아 유기현! 하는 사람도 틀림없이 나이 많은 올드세대다.

 

 

       드뷔시 : 조각배로(En Bat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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