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다솔사.
몇 년 만에 갔더니 상전벽해가 되어 있었다.
우선은 대규모 주차장이 번듯하게 들어앉았다. 이젠 여기도 관광지가 다 됐구나.
다솔사로 들어가는 길이 아름답다.
선차도량이라 해서 처음에 茶率寺로 알았는데 多率寺다.
이름처럼 소나무숲이 장관이다. 그것보다는 쭉쭉 뻗은 삼나무 편백나무 숲길이 빼어나다.
경내는 털머위로 뒤덮였다. 노란 꽃이 필 무렵엔 이것도 볼만하겠다 싶어 다음엔 언제 올까를 재 본다.
푸르른 나날이다. 사시사철 푸른 차나무의 고고함이 미쁘다. 일주문 없는 들머리는 울창한 나무숲이다. 이 길에 서면 정신이 맑아져 그때 문득 세계 모든 것은 空이다.
대양루는 설법도 하고 다솔사에 대한 자료를 전시해 놓았었는데 이번에 가니 출입을 통제해 놓았다.
적멸寂滅이 아닌 적막寂寞의 공간이 돼 있다.
적멸보궁 뒤로 초록의 차밭 풍경이다.
다솔사는 진신사리를 모셨다.
이런 불보사찰은 대웅전에 부처가 없는 게 일반적인데 다솔사는 유리창 너머 사리탑이 보이고 법당에도 불상이 있다. 흔하지 않은 와불이다.
와불은 열반하는 석가모니를 형상화한 것이지만 우리 우바새들이 보기엔 편안하게 누워서 쉬시는 것처럼 보인다. 시앗을 보면 질투도 하고, 피곤하면 누워서 멍때리는, 결국 부처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느끼면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누워 있는 부처 뒤로 사리탑이 있다. 어느 해인가는 연심의 여인과 함께 사리탑을 돌았다.
사리탑을 돌면서 이 사랑을 잇게 해달라고 기원하진 않았다.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고 그 외의 것은 강요할 수 없다.
내가 저 산을 좋아한다고 저 산도 나를 좋아하길 바랄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면 나의 사랑은 그것 자체로 완성된 것이다.
이곳은 김동리가 머물면서 소설 <등신불>을 쓴 곳이다.
도량을 떠나 내려오면서 다시 거닐게 되는 숲길.
"태허루에서 정오를 아뢰는 큰북소리가 목어(木魚)와 함께 으르렁거리며 들려온다."
<등신불>의 마지막 구절은 저러한데 내 등뒤 대양루에서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삼나무 숲길 우듬지에서 박새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목하 모감주나무 노란 꽃이 절정이다.
강상구 작곡 :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투어 서울 한남동 골목 (0) | 2023.07.19 |
---|---|
휴휴암 (0) | 2023.07.13 |
미인폭포를 찾아 심포협곡 속으로 (0) | 2023.07.03 |
식물의 낙원, 외도 보타니아 (0) | 2023.06.30 |
보라색 평원, 정읍 허브원 (0) | 2023.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