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내내 비가 흩뿌렸다. 을씨년스럽다.
천불천탑이라 한다.
워낙 많아 세어 보진 못하지만 아마도 천불 이상이고 천탑 이상일 듯하다.
우중충하고 좀은 음산한 날씨에 보이는 풍경은 자못 기괴한 느낌도 있다.
홍콩 무협영화나 <천년유혼> 류의 고전판타지영화 같은 데서나 접한 이색적인 풍경이다. 안개라도 자욱했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여긴 합천에 있는 허굴산이다.
관음보살이 강림했다는 설이 전해져 오는 일종의 성지인 이곳에 한 스님이 10여 년 동안 주위의 돌들을 모아 탑을 쌓았다고 한다.
탑 쌓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보다도 불상들은 어찌 모았는지 불가사의다. 불상들이 모두 다 정교하다. 이걸 손수 제작하지는 않았을 터.
한 관광객이 사찰은 어디냐고 내게 물어 온다.
사찰은 없다. 여긴 그냥 ‘천불천탑’이다.
속칭 ‘기도발’이 세다는 용바위가 주축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탑과 불상이다.
입구에 소지용 리본이 비치되어 있다. 소원을 적어 줄에 달고 소원성취를 비는 형식이다. 불전함에 돈을 넣으면 된다.
강제성은 없고 자율적이다. 공짜로 구경해도 되고 소지를 적긴 하되 돈은 안 넣어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공짜로 들어가진 않는다. 여기까지 온 정성으로는 다문 천 원이라도 공양을 올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입장료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 돈들을 모아 건물을 지을 계획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혹 대웅전 같은 걸 지으려는 건지는 몰라도 그냥 이대로 놔두면 좋겠다는.
오색 리본이 걸린 정경은 또 다른 기괴한 풍경이 된다.
용바위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나는 소원이 없다.
나는 현재 소소하지만 행복중이다.
이건 뒷간이다 . 이것도 이색적인 비주얼이다(좀 우스꽝스러운 의미로).
비 내리는 궂은날인데도 제법 사람이 많다. 내 눈으로 보기에 불자들은 그닥 많진 않고 대부분 이색적 풍경을 관광하러 온 사람들이다.
부제를 붙인다면 이곳은 '한국 속의 불국토'라 할까.
레베카 루커 :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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