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바다가 보이는 언덕 논골담

설리숲 2022. 8. 19. 21:19

 

휴가의 절정기인데다가 주말이었다.

동해 묵호를 갈 생각이었다면 미리 숙소를 예약을 했어야 했는데 난 그런 면에선 절박함이 항상 부족하다. 뭐 있겠지. 없으면 돌아오면 되지.

그랬더니 과연 모텔이 없다. 간판 불도 거의 다 꺼졌고 간혹 불이 켜져 있는 곳엘 가니 다 만실이다.

내가 그럼 그렇지.

집으로 돌아오려니 너무도 멀다.

이왕 왔으니 방은 없어도 차에서 자면 된다.

 

묵호항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잠을 청한다. 이 일대는 주차할 곳이 많아서 좋다.

주차장에 차가 많다. 시동을 캬놓고 있는 차들이 많은 걸로 보아 그들도 나처럼 차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인 것 같다. 아마 나처럼 숙소를 못 잡은 게 분명하다.

 

나는 저녁놀을 좋아한다.

이유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다.

그래서 내 여행사진은 죄다 저녁놀이고 아침놀은 거의 없다.

 

이번엔 동해 바닷가에서 차박(차박 맞나?)을 한 덕분에 아침놀을 본다. 경천동지할 일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여행자이기를 꿈구는 사람들에겐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지만

현지 주민들의 삶은 척박하고 고달프다.

 

 

 

묵호 논골담 언덕.

벽화로 유명한 마을들은 대개 이런 달동네다.

통영 동피랑, 여수 고소동, 서울 이화동, 부산 흰여울, 청주 수암골 등이 그렇다.

그림으로 빈민가의 부정적인 옛 흔적을 가리고 싶은 일종의 포장일까. 애잔한 슬픔이다.

 

 

 

 

 

 

 

 

 

 

 

   평생을 발아래 바다를 두고 살아온 사람들

   고샅길 산등성이에 매서운 바람이 들이쳐도

   아부지들은 먼 바다로 * 이까바리 나가셨다

   

   남자들이 떠난 지붕 위엔

   밤이면 별꽃들이 저 혼자 피고 지고

   아침이면 가난이 고드름으로 달려

   온종일 허-기는 식구들처럼 붙어 있었다

 

   칼바람에 온몸을 싸맨 채

   이까 배를 가르고 명태 내장을 다듬으며

   덕장에서 꾸덕꾸덕 명태가 마를 동안

   그리움도 외로움도 얼었다 녹았다

   설움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수없이 오르내리던 비탈진 골목길엔

 

   닳아버린 고벵이 관절처럼

   주인 없는 대문이 녹슨 채 삐걱거리고

   허공에서 딸그락딸그락 명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올 즈음

   한 해 겨울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겨울이 다 가도록 돌아오지 못한 아부지들을 기다리며

   등대는 밤이면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애타게 애타게 손짓을 했지만

   아부지들은 먼 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세월은 구불구불 논골로 돌고 돌아

   그 옛날 새댁 옥희 엄마는

   기억도 희미해진 할머니가 되었다

   

   망부석처럼 서 있는 묵호등대

   그 불빛 아래엔

   조갑지만큼이나 숱한 사연이

   못다 한 이야기로 담벼락에 피어나고

   고봉밥처럼 넉넉하게 정을 나누며

   바다바라기를 하는 사람들이

   따개비처럼 따딱 붙어서 살고 있다

 

                                김진자 <논골담화>

 

 

 

 

 
 

바람이 언덕을 향하는 이유는

숙명처럼 기다리는

언덕배기의 삶을

차마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람 앞에 내어준 삶

아비와 남편 삼킨 바람은

다시 묵호 언덕으로 불어와

꾸들꾸들 오징어 명태를 말린다

남은 이들을 살려낸다

그들에게 바람은 삶이며 죽음이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바람이다

 

 

 

 

 

 

 

 

 

오늘도 아버지의 등불은 검은 바다를 서성인다

 

 

 

 

 

 

 

 

그러나 바람의 언덕에 오늘은 일말의 바람도 없다.

햇볕은 가득 쏟아지고 그늘은 엉성하고 한낮의 폭염은 여전히 극렬했다.

이제 여름이 끝났으면.

 

 

 

 

 

 

묵호엘 가면 곰칫국이 맛있어요.

동해에 갈 때마다 생각나는 음성.

못생긴 생선의 대명사 물곰 곰치.

그 담백한 국물 맛이 좋다. 겨울바람 맹렬한 날에도 좋지만

뜨거운 날은 더 좋다.

 

그런데 우리가 곰치로 알고 있는 그 고기의 진짜 이름은 ‘꼼치’다.

곰치라는 생선은 따로 있으며 꼼치와 종류가 전혀 다르다. 또 물메기와도 다르다.

앞으로는 나도 정확하게 꼼치, 또는 물곰으로 부르리.

 

 

 

 

 

 

 

 

 

                        최백호 : 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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