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제주 비자림로

설리숲 2022. 7. 14. 23:56

 

 

제주도 동부지역을 반으로 가르며 사려니숲에서부터 동쪽 해안까지 뻗은 1112번 도로.

비자림로다.

이름은 비자림로이지만 비자나무는 없다.

이 길을 따라 거뭇하게 숲을 이룬 건 삼나무다.

길의 끄트머리 쯤에 비자림이 있어 도로명을 그리 지었을 것이다.

 

이 삼나무길이 도보여행자들에게는 아주 근사한 트레킹 코스가 될 수 있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에 보행자가 걸을 수 있는 갓길이 없다.

섬 동편 성산과 우도로 가는 관광 요충로라서 관광객이 많은 주말엔 차량이 몰려 언감생심 걸을 엄두조차 못 낸다.

 

 

 

 

 

 

 

 

 

 

 

 

 

 

 

 

 

그나마 한적한 평일을 택해 그 풍경을 담았다.

여러 날을 찜통처럼 삶아대더니 하늘이 흐려졌다. 기상예보를 통해 비소식을 접한 터라 미리 우산을 챙겨 들고 온 터였다.

 

그리고 염천을 식히며 빗방울이 듣는다.

삽시간에 대기는 습기로 가득 찼다.

삼나무숲에 내리는 아스라한 빗소리, 우산을 적시는 청량한 빗소리, 아스팔트를 질주하는 차들의 바퀴에서 분사되는 빗소리. . .

 

온통 비뿐인 것 같은 세계를 걷는 기분이 괜찮다. 빗물이 튀어 무릎 아래는 흠뻑 젖었다. 삼나무 숲은 더욱 검어졌다.

 

 

 

 

 

 

 

 

 

제주도는 카페의 천국.

어느 호젓한 길목을 돌아서면 만나게 되는 카페들.

이런 데도 장사가 될까 하지만 들어가 보면 의외로 손님이 많다. 제주의 카페들이 대부분 그렇다.

커피는 맛이 아니라 분위기다. 1회용 믹스커피도 어느 장소 어느 분위기에서 타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창밖으로 삼나무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마시는 커피는 둘둘삼 다방커피라도 그 맛은 일품이다.

 

 

 

 

 

 

 

 

 

 

 

제주도가 이 비자림로를 넓히려 나무를 베어내다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한 일이 있다. 그 아름다운 자원을 훼손하지 말자는 여론이 팽배했다.

 

이곳이 삼나무를 베다가 중단한 그 구간이다.

 

나도 아까운 숲이 훼손되는 걸 반대하는 입장이다.

다만 또 다른 쪽으로 한번 생각해 본다.

관광객들의 차들이 몰려드는 이 도로는 교통지옥이다. 어쩌다 한번 오는 외지인들이야 짜증 한번 내고 놀다 가면 그만이지만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참말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에서 시행하려던 도로확장은 주민들 입장에선 좋은 행정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자연경관도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명제를 단다면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넓히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겠다는 다소 비틀린 나의 생각.

막상 현지에 와서 보니 숲이 넓어 그중 길을 낼 만큼의 나무를 베어내도 치명적인 훼손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픽하이 & 윤하 : 우산

 

 

 

 

한국의 아름다운 길 백스무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