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도 아닌 것이
보라색도 아닌 것이
어느 때는 노랑에 어느 때는 하양,
또 다른 때는 분홍.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꽃말은 그래서
변덕, 변하기 쉬운 마음 어쩌고저쩌고.
산수국을 보러 떠나온 길이지만 우리를 맞는 건 눈부시게 하얀 개망초입니다.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하다고 이효석은 메밀꽃을 묘사했거니와 그 표현은 이 개망초에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이 꽃이 흐드러지면 계절은 깔축없이 여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꽃.
너무나 흔해 빠져서 고운 대접을 못 받고 있지만 기실은 청초하고 순결한 매력으로 이보다 더한 꽃이 없습니다.
산수국은 어둑신하고 습한 곳에 삽니다.
그 음습한 풍경을 아름답게 장식한 꽃.
철조망 너머 그네들도 다 똑같은 자태 고운 꽃입니다.
6·25 72주년이었습니다.
휴전선 너머 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피를 가진 한 겨레인데 원수처럼 대하게 된 현실이 기가막히고 슬픕니다.
이 탁트인 정상에 오르면 가슴이 뻥 뚤립니다.
이곳서 내려다보는 철원평야는 가슴 안으로 자유와 더불어 고독을 들이밉니다.
더는 갈 데가 없을 것 같은 일망무제의 평원.
오늘은 부연 연무가 서려 그너머 풍광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에 더 아련하게 그리운 저쪽 너머.
해설사의 강의를 듣습니다.
저 광활한 철원평야 자리는 전쟁 전에는 2만호가 살던 번화가였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다들 사라지고 나서 논이 되고 질 좋은 쌀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전화위복일까요.
전쟁이 나길 잘했나?
숲에는 산수국만 있는 게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온갖 풀나무가 아름찬,
숲은 점점 더 깊은 여름 속으로 들어 갑니다.
노동당사.
상처는 여전히 남아 고통스러운데 역사는 흘러 이 상징물들도 시나브로 허물어져 내립니다. 무심한 풀들만 옹골차게 뿌리를 박고 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노동당사 앞에는 근대문화거리를 조성한다는 안내팻말과 함께 허접한 건물들을 짓고 있습니다.
소이산 전망대로 오르는 모노레일도 준공이 임박해 있습니다.
돈벌이에 환장한 사람들 같습니다. 이럴 때 지방자치제 무용론을 생각하곤 합니다.
한탄강 주상절리에도 나무데크로 절벽에다 볼썽사나운 잔도를 놓아 환경과 미관을 파괴한 철원군입니다.
피터 폴 매리 :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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