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정읍.
정염의 기를 다 발산했는가.
벚꽃들은 지금 화려한 꽃비 되어 내려 쌓이고 있었다.
늦가을의 낙엽보다 더 비장하게 슬픈 봄철의 낙화.
하롱하롱 앵두꽃 하얀 잎이 흩날려 떨어질 때의 처연함을 시골에서의 유년시절에 이미 체득했었다. 조숙하기도 하여라!
보통의 낙화는 이처럼 슬픔을 주지만 벚꽃잎은 아니다.
비처럼 떨어지는 꽃잎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활짝 핀 화양연화 꽃잎보다 흩어져 날리는 낙화를 좋아한다.
슬퍼서 좋아한다니!
이율배반의 모순덩어리인가.
사실 꽃잎 지는 걸 슬퍼할 이유가 없다.
꽃이 짐으로써 열매를 맺으니 그들로서는 그것이 더 화려한 생으로 진격하는 일이다.
정읍시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정읍천의 가로수길은 목하 벚꽃의 낙화가 절정이다.
꽃비...
건듯 바람에도 호로로로 싸락눈처럼 흩날리는 낙화.
사진을 흑백으로 전환하여 보니 영락없는 겨울풍경이다.
이제 저 꽃잎들 다 지고 초록 잎이 돋기 시작하면 봄의 한가운데다. 여름을 향하여 진격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나 덥던지.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지네
함박눈인양 날리네 깔리네.
꽃 속에
꽃길로
꽃을 밟고 나는 돌아가네.
꽃이 달빛에 졸고
봄달이 꽃 속에 졸고
꿈결 같은데
별은 꽃과 더불어
아슬한 모하수 萬里 꽃 사이로 흐르네.
꽃잎이 날려서
문둥이에 부닥치네
시악시처럼 서럽지도 않게
가슴에 안기네.
꽃이 지네
꽃이 지네
뉘 사랑의 이별인가
이 밤에 몰래 떠나가는가.
꽃지는 밤
꽃을 밟고
옛날을 다시 걸어
꽃길로
꽃을 밟고
나는 돌아가네.
한하운 <踏花歸>
YB : 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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