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달성 비슬산의 진달래

설리숲 2022. 4. 25. 08:18

 

지난 주말에 비슬산에 갔다가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때는 진달래철이라 상춘객들 많을 것을 예상했어야 함에도,

사실 예상을 전혀 안 한건 아니었지만서두 토요일에다 대도시 인근 산이라는 것까진 감안하지 못했다.

느긋하게 너무도 느긋하게 올라가니 이미 입구에서부터 차가 나라미를 서 있다. 연도에 조그만 공간이라도 있으면 게다가 차를 주차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라 내려서 걸어 올라가는 등산객 모태 일대 아수라장이었다. 주차장에 차가 한 대 빠져야 하나가 새로 들어갈 판인데 진달래놀이 하러 온 차가 금방 빠질 리가 없다.

접근도 못하고 돌아 내려오면서 스스로 짜증이 났다. 이 게으름이라니!

 

그리고 일주일 후에 아예 밤에 길을 떠났다. 도착해서 차에서 잠을 잘 생각이었다.

밤을 달려 비슬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이 텅 비었다. 잠을 청한다.

여명과 함께 잠을 깼더니 이른 새벽인데도 주차장에 차가 다 들어와 있다. 벌써 이 정도면 오늘도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이다. 주말 아니고 평일인데도!

일찍 도착해 있길 잘했다. 확실히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

 

전기차를 탈 요량이었으나 첫 운행시간인 9시까지는 시간이 멀었다. 더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그것 타는 것도 한참을 줄을 서야 할 것이다. 걸어올라가는 게 훨씬 빠르다.

 

 

 

 

 

 

 

 

 

 

 

 

 

 

 

 

 

 

 

 

 

 

 

 

 

 

 

 

 

 

 

 

 

 

 

 

 

 

 

 

 

 

 

 

 

 

 

 

 

 

 

 

 

 

유년시절 봄이면 산내들에 화사하게 진달래가 피어나곤 했다. 신기하게도 깎아지른듯한 벼랑에 핀 진달래가 더 예쁘고 탐스러웠다.

꽃들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을 골라 터전을 잡는다는 생각을 했다.

비슬산 정상의 진달래도 그럴 것이었다. 사람들이 오르기 힘든 높고 험한 곳에 질펀하게 군락하는 이유가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산을 깎고 길을 내어 차를 운행한다. 너무나 쉽게 고고한 진달래를 만난다.

 

 

 

 

 

 

 

 

대견사로 오르는 길엔 철쭉이 덜퍽지게 늘어섰다.

 

 

너무 아름다우면 처연한 슬픔이 된다.

진달래는 비장한 아름다움이다.

 

여동생에게 예쁜 꽃을 꺾어 주기 위해 벼랑에 올랐다가 떨어진 오빠의 붉은 피가 있었다.

 

내 유년시절은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가 쉴 새없이 넘어오던 시절이었다. 이를 토벌하기 위한 군인들이 내 강원도 산골에도 주둔을 했다. 진달래 꺾으러 산에 올랐던 처녀는 그곳 군인한테 변을 당하고 몸을 던졌다가 죽지도 못하고 평생을 반신불수로 살았다. 진달래꽃잎에는 그의 고통과 눈물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문둥이가 진달래 뒤에 숨어 있다가 꽃 꺾으러 온 아이들 간을 빼먹는다고 겁을 주던 어머니의 장난은 주체가 달랐지 정말이었다.

 

뒷골 길가에 애무덤이 하나 있어 대낮에도 어쩐지 으스스 섬찟해 꼬마는 지나가길 두려워했다. 무덤가에 다보록이 핀 진달래가 유난히 진하고 예뻤지만 그걸 선뜻 꺾긴커녕 그 선홍색이 더 무서워 이따금 악몽을 꾸곤 했다.

 

 

진달래가 피는 사월은 잔인한 달이다.

4·19의 피, 세월호의 고통. 또 제주 4·3의 비극.

 

비슬산은 비장한 슬픔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Deep Purple :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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