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고양이에 관한 일기 한 페이지

설리숲 2022. 3. 18. 00:36

 

어느 날부턴지 노란 얼룩고양이가 한 마리 보였다.

잠깐 보인 게 아니고 그날부터 내내 회사에서 살고 있는 중이다.

전에도 사내에서 거주하던 고양이 하나가 새끼까지 낳고 가솔하여 살다가 관심 없는 중에 어디로 갔는지 없더니 이 놈이 새로 들어와 터전을 잡았다.

어린 고양이었다. 전의 그 새끼 중의 한 놈인지 다른 생 나그네인지 모르나 번죽 좋게 현관 앞 교단에 제 영역을 마련했다.

 

나는 개나 고양이 등 가축이건 애완동물이든 싫어한다. 짐승들은 그 낌새에 민감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시골길이나 여행길에서도 개들이 유난히 극성스럽게 나를 더 짖는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대개 개와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편이니 회사직원들이 오가며 예쁘다고 만지는 등 애정표현을 해 주거나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점심에 먹다 남긴 밥이나 이것저것 간식도 놓아주고 하면서 친밀감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니 이놈은 완전히 회사의 일원이 된 듯이 사람만 보면 반가워한다. 그런데 나한테만은 뻘쭘하게 냉대하는 행동을 보인다. 동물이나 가축을 싫어하는 내게서 그런 기운이 발산되는 것이겠거니 생각한다.

 

우리 회사는 식품회사다. 실내로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식품회사에 동물이 상주하거나 출입해서는 안된다. 어느 날 전직원들에게 공지가 내렸다.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는 내용이다.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 하자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집에 데려가서 키우라는 권고 겸 경고였다.

 

이후로 고양이에게 일체의 음식이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간식거리를 몰래 던져주는 A씨를 보긴 했다. 어쨌든 직원들의 애정 속에 주리지 않은 생활을 하던 고양이놈은 배가 고파졌다.

회사를 나갈 것이라던 예상은 맞지 않았다.

놈은 사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이나 쓰레기를 담은 봉투를 뒤졌다. 식품회사니 여기저기 뒤지면 먹을 게 얼마든지 있었다. 단지 여태까지는 우아하게 앉아서 주는 것만 받아먹는 호사스런 생활이었다면 지금은 제 능력껏 버르적거려 영위하는 것이 다를 뿐 회사에서 나갈 기미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놈이 쓰레기를 저지레해 놓으니 회사 경관만 더 지저분해지고 우리 일이 더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고양이가 또 하나 들어왔다. 아주 새카맣고 덩치도 큰 수놈이었다. 처음엔 낯선 암코양이를 위협하며 사납게 공격해 댔고 노란 고양이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쫓겨 다녔다. 여기가 제 구역이라 텃세도 부릴만하건만 암놈은 어린 고양이인데다가 상대는 덩치 큰 성묘(成猫)에 날쌘 수놈이니 겁에 질려 애초 상대가 될 리 없다.

수놈은 이후 날마다 한 차례씩 와서는 암놈을 못살게 굴었고 암놈은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니는 생활을 반복했다. 수놈이 회사에 들어와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더니 이젠 둘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가, 데면데면하면서도 공격하고 도망 다니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간의 권고와 경고에도 주방 이모는 사람들 안 보이게 녀석에게 음식을 주는 눈치였다. 그러니 녀석은 아예 주방 문앞에 터전을 잡고 다시 예전의 여왕 같은 달콤한 생활을 누렸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고양이가 보이질 않았다. 주방 이모가 병원에 데려다 맡겼다고 했다. 새끼를 배서 낙태수술을 시켰다는 것이다. 아, 그 못살게 굴었던 수놈이 그랬구나 다들 그리 짐작을 했다.

그보다는 왜 낙태를 시켜야 했는지 나는 의문이다. 그들의 삶을 사람이 조종할 권리가 있는가. 나는 마음이 아팠다. 아직 어린 암놈이 힘센 수놈에게 당해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것도 동정이 갔지만, 그래도 어미인데 인간에 의해 자식을 잃은 것을 생각하니 몹시 가슴이 아프고 애정결핍의 인간의 행태가 몹시 싫었다. 그러면서 동물을 사랑한다고 사람들은 늘 말하곤 한다.

 

강아지가 싫어하는 옷을 입히고, 발버둥치며 거부하는데도 강제로 목욕을 시킨다. 그걸 사람은 사랑이라고 한다. 상대방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내 기준으로 강행한다.

원래 개나 고양이 등을 싫어하지만 그 아픈 상황을 접하고는 고양이가 측은해졌다.

 

그리고 며칠 후 놈이 돌아왔다. 한 이틀 간은 잘 움직이지도 않고 거의 같은 자리에서 하루 종일 울었다. 수술 후의 통증도 있겠으나 나는 그보다는 정신적인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큰 사건을 겪은 것도 그렇고 그보다 자식을 잃어버린 아픔이 오죽할까 싶었다. 사람보다도 짐승의 모성애는 더욱더 크다는데 창자가 끊어지는 그 고통이려니 짐작하니 나는 매우 가슴이 아팠다.

 

며칠이 더 지나고 놈은 다시 평온해졌는데 큰 사건을 겪은 후라 그런가 나를 냉대하던 행동도 사라지고 나를 보면 어설프게나마 꼬리를 하늘로 세우며 친근함을 표시한다. 나는 그게 또 마음 아프다. 아, 인간의 비정함이여, 그 잔혹함이여.

 

이제 놈이 우리 회사를 나가는 일은 영원히 없겠거니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개나 고양이 등에 대한 애정은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동정하되 사랑하지 말지어다.

또한 미워하여 악업을 쌓지 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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