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전주 팔복동철길 이팝나무

설리숲 2021. 5. 5. 23:17

 

5월의 첫날이었습니다.

아주 추운 아침입니다.

설악산 오대산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이 푸른 5월에.

 

이곳은 간간이 는개비가 흩뿌렸습니다. 을씨년스런 하루였어요.

지난 11월의 첫날도 비와 함께 시작되더니

이 5월의 첫날도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아니라 이곳의 나무들도 눈을 맞은 듯 저리 하얗습니다.

전주 팔복동 옛 기찻길이예요.

유명해서 이맘때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지만, 특별히 가꾸거나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소박한 매력이 있습니다.

폐철로와 이팝나무 하얀 꽃.

얼핏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듯한데 직접 풍광을 대하니 제법 그림이 됩니다.

 

 

 

가난했던 옛 사람들이 이름만이라도 배불러지라고 이팝나무라 했다고 합니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는데 어째 그럴싸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팔복동 이팝나무 철길은 그닥 긴 거리는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똑같은 이 풍경입니다.

철로 옆에 팔복예술공장이라는 아트공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화려함을 지양한, 고상하고 세련된 공간입니다.

마치 프랑스 누아르 작품 속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이곳에서 근사한 신을 한번 연출했을 터입니다. 홍상수 감독이 좋아할 만한 배경입니다.

 

이 폐허 같은 공간을 거닐고 있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유럽의 어느 장소에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이런 낯선 분위기가 맘에 들었습니다. 역시 ‘예향 전주’입니다.

 

 

 

 

 

다시 이팝나무 아래로 들어갔어요.

 

 

 

이 꽃들마저 떨어지고 나면 이제 깔축없이 여름입니다.

설악산의 하얀 눈도 녹고, 팔복동의 하얀 꽃도 지면서 봄 청춘도 완전히 끝나고 맙니다.

낙엽 지는 늦가을보다도 꽃잎 지는 늦봄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시드는 청춘.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가버린 사랑’이기 때문에.

 

 

 

이 오월, 포스팅하는 제 글의 주 테마는 이팝나무가 될 것도 같습니다.

 

이 조용한 밤. 사방에서 꽃잎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그리고 저만치 우리들 청춘이 멀어져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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