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광주의 이팝나무.... 5월, 꽃잎

설리숲 2021. 5. 19. 20:13

 

 

망월동 5·18 묘역으로 가는 민주로에는 이팝나무 흰 꽃잎이 절정이었습니다.

묘역을 성역화하면서 임들의 넋을 추모하는 취지로 5월에 꽃이 피는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심었습니다.

이만큼 세월이 흘러 무심한 이들에겐 그저 예쁜 꽃구경의 즐거움일 테지만 그날을 겪고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가슴을 찢는 처절한 아픔의 꽃잎기도 합니다.

올해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입니다.

처음으로 망월동을 찾았습니다.

그간 해마다 임들을 추모해 왔으면서 어찌 이곳을 찾을 생각은 한번도 안 했는지 모릅니다.

 

 

 

묘역은 우선 정갈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날의 역사만 잠시 기억에서 지운다면 반나절 놀다 가기 좋은 시민공원입니다.

입구까지 줄지어 선 이팝나무는 이 여행의 주 테마이구요.

 

 

추모탑 앞에서 제법 긴 묵념을 하고 묘비들을 둘러봅니다. 가슴이 비장해집니다. 먼먼 임진왜란 때도 아니고 육이오 때도 아닌, 같은 하늘 아래 겪었던 일이라 감회가 남다릅니다. 내가 강원도가 아닌 광주에서 자랐다면 같이 어울려 뛰어놀았을 영령들입니다.

 

 

 

     63년생

                     

                              김석영

 

  63년생이 운다

  80년 5월에 붙박인 채

  꿈처럼 망월동 언덕에 누워 있는

  꽃다운 열여덟 63년생을

  우연히 마주친

  머리 희끗한 쉰일곱의 63년생이

  바라본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

  속절없이 갈라진 언덕 위에서

  63년생이 63년생을

  굽어본다

 

  63년생이 운다

 

 

 

 

날은 더워 송글송글 땀도 맺힙니다.

휴게공원이 있고 자동판매기가 있어 캔음료 하나를 따서 마시는데 늘 그 시각에 음악을 트는 것인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묘역에 흘러나옵니다.

평시에도 비장한 노래인데 현장에서 듣는 행진곡은 도저히 절제가 안돼 저절로 눈물이 나옵니다.

 

 

미안합니다. 임들이시여.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41년이 지나 이제사 찾아왔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우리 집 TV는 유일하게 KBS만 나왔습니다.

KBS는 날마다 북괴 불순분자가 침투하여 광주를 선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컬러방송이었는데도 KBS는 흑백스틸사진으로만 내보냈습니다.

흑백스틸사진은 사람을 선동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학교 선생놈들도 전라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서 전두환 장군이 저 빨갱이들을 소탕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모든 귀와 눈이 막힌 ‘군복의 장막’에서 어린 내가 어찌 진실을 알겠습니까.

 

나중에 참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많은 날 지나고 이제야 왔습니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영령들이여.

 

 

음료를 다 마시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내려왔습니다.

유난히 이팝나무 꽃잎이 하얗게 눈부신 오후입니다.

 

 

 

 

 

하얀 오월

 

                                 손인식

 

하마 어떤 조짐이 있었지. “어두워징께 어여 집에 가자잉?” 동료의 권유 마다하고 시민들 폭도로 만들 순 없어 총기 반납, 긴 굴 빠져나가기 어찌 이리 더딜까 두 주먹 불끈다빔을 놓고 기다린다, 아직도 어둔 새벽녘 크르릉 멀리서울 가는 기차소리인가 번쩍, 우르릉 쾅, 멍-해진 순간, 고약한 냄새, 끈적끈적한, 쿨럭쿨럭, 하얀 이팝 지천이네.

 

밤 뒤척뒤척 눈뜬 아침 사십 년 몸에 박혀 욱신욱신 해묵은 탄흔, 눈앞에서 총맞아 쓰러진 그, 제1광수로 명명되어 가족도 없고 시신도 없고, 혼자 살아남아 부끄러운 사람 김씨, 그날 그 자리 막걸리로 음복한다. 마음 삼키듯 지긋이 눈을 감고 그대로 좀 보쇼. 속 뒤집덜랑 말고. 전남도청 전일빌딩 금남로여, 아이고 그날의 오월, 이팝꽃 피면, 이팝꽃 피면.

 

 

1996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에는 신중현의 노래 <꽃잎>이 주제가로 쓰여졌습니다. 이 영화는 최윤 작가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극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 이후로 노래 <꽃잎>은 한때 좌파 노래로 매도되기도 했습니다.

<아침이슬>이 시위현장에서 불리자,

영문도 모른 채 어느 아침 일어나 보니 불온좌파 가수가 되어 있었다는 양희은의 사례도 있었지요. 양희은의 모든 노래가 금지곡이 되고 여러 해 가수로서의 생활에 족쇄가 채워졌습니다.

만약 영화 <꽃잎> 제작연도가 1996년이 아니었다면 영화에 삽입된 <꽆잎>을 작곡한 신중현이나 노래를 부른 김추자 이정화도 역시 그런 참화를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친일행위로 부와 명성을 누린 안익태가 만든 노래를 국가로 부르고 있는 민족입니다.

지금도.

 

 

 

 

어떤 꽃잎

 

                                          김영숙

 

  의귀리 현의 합장묘 몸살 앓는 꽃 있대요

  치레한 돌담 아래 젖가슴 탱탱한 꽃

  만삭의 봄까치꽃이 유선乳腺 또 푸르러요

  총 맞은 그 아주머니 해산달이었대요

  아, 당겨진 배 위로 별이 졌을 거예요

  두 아들 꼭 쥔 손이 기도로 뜨거웠겠지요

  금어禁語의 시간 지나 자꾸만 돋는 혀

  ‘무사 죽였댄 헙디과 무사 죽였댄 헙디과’

  출근길 나를 붙잡고 파랗게 떠는 꽃잎

 

 

 

 구 묘역 입구에 있는 이것.

 

 무력으로 대통령을 찬탈한 전두환 부부가 광주의 코앞인 담양의 한 시골마을에서 하룻밤 묵어 갔다.

그리고 마을에 기념비를 세웠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 민막마을"이라는 비명이 적혔다.

 

후에 광주 사람들이 비석을 떼어다 망월동 구 묘역 입구 길목에 박아 놓았다. 누구라도 이 비석을  밟고 가라는 의도였다.

그후 이것을 밟고 안 밟고의 여부로 그 사람의 성향을 확인하는 가늠자가 되었다.

대표적 예로 김무성은 안 밟았다. 그의 본색이 명확해졌다. 뼛속까지 친일파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를 추종하는 인물이다.

 

 

 

 

이정화 : 꽃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