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석모도 바람길

설리숲 2020. 12. 13. 21:00

 

 

지난 가을 강화도행 교통의 열악함을 절감했던 터라 새벽 일찍 서둘렀다.

5시에 일어나 대충 낯만 씻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겨울에는 차 유리가 허옇게 얼어 녹이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일쑤라 안날 저녁에 미리 종이박스로 앞유리를 덮어 놓아서 시동 걸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실은 차를 바꾸고 시운전 겸 자축의 의미로 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를 질주하고 싶었던 여행이기도 하다. 새 차에 만족한다. 잘 샀군.

 

 

 

 

 

일찍 떠난 덕분에 막히지 않고 예상된 시각에 강화에 입도했다.

그리고 다시 석모도로 건너간다. 석모도 바람길을 걸을 요량이었다.

이 길은 강화나들길의 한 구간으로 석모도석착장이 그 시발점으로 되어 있다. 내비에 의지해 갔는데 내비가 엉뚱한 곳에 내려준다.

석모대교가 개통한 지 3년이라 그 전까지는 오로지 배편으로 건너다녔다.

석모대교가 개통된 이후로 연락선은 쓸모가 없어져 대신 관광유람선으로 대체되었는데 그 선착장은 예전 자리가 아닌 석포리로 이동했다. 기실 나룻부리항이 바람길의 시발점인 것을 내비게이션엔 수정되지 않고 옛 선착장이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원래 16km인 길을 5km나 더 걸었다.

그래도 새벽부터 일찍 서둘러서 여유 있게 유유자적 즐길 수 있었다.

 

 

바람길이라 이름은 붙였지만 내내 바다임에도 하루 종일 바람은 없었다.

겨울의 시작.

햇살 따스하고 바람 없는 고즈넉한 날이어도 역시 겨울이라 수면이 파랗게 얼었다. 그 위로 햇빛이 눈부시게 반사한다. 아, 비로소 겨울을 실감한다.

쓸쓸한 날들의 시작.

 

 

 

 

두어 번 길찾기에 헤매고 바다 저쪽으로 태양이 이울어질 때쯤 해서 보문사 앞에 도착한다. 개펄에 석양이 내리기 시작했다.

저만치 마주 오던 스님 하나가 가까워지면서 내게 합장하고 인사를 먼저 한다. 엉겁결에 나도 마주 응대하여 인사한다. 엎드려 절받기 모양새가 됐다. 먼저 아는 체를 안 한 게 좀 민망했다.

나야 모르는 사람에게 괜히 인사를 해서 그가 불편해하느니 처음부터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는데 스님 쪽에서는 또 그러기가 멋쩍어서 인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듯했다. 비로소 ‘바람길’을 생각한다.

늘 그랬다. 스쳐 지나가는 스님들의 뒤에는 늘 바람이 지나가는 걸 느끼곤 했다.

이유 없이 애잔한 감정이 스며들곤 했다.

 

 

 

바다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 좋다.

 

 

 

 

 

 

 

    장필순 :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서늘한 숲 > 한국의 아름다운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춘선숲길  (0) 2021.02.22
신안 순례길에서  (0) 2021.02.15
강천사 가는 길  (0) 2020.11.22
갑사 가는 길  (0) 2020.11.16
영동 백화산 계곡길  (0) 202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