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좋아하지만 역시 설악산이 명산이다.
북쪽의 금강산이나 칠보산은 못 가봤으니 말할 건 없고 남한에서는 설악산이 갑이다.
피를 토한듯한 단풍을 기대하고 들었지만 좀 이른 건지 올해의 단풍이 이런 건지, 혹은 내 기대치가 높아서인지는 모르나 절정의 붉은 단풍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설악의 절경은 명불허전이어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예전에도 몇 번 가보지 않은 건 아닌데 그때는 도대체 뭘 보고 다녔는지 지금의 황홀한 감상이 없었다.
사물을 보는 눈도 연륜이 붙어야 진면목을 알아본다는 걸 짐작한다. 수없이 마주쳐 지나가는 아이들은 그저 계단 깡충깡충 오르는 것에 더 흥미가 있지 산세를 감상하지는 않는 것이 느껴지니 짜장 나의 그 짐작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의 예상에 이 주말이 단풍절정인데다가 마침 방역지침이 1단계로 완화된 첫 주말이어서 산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오색지구는 땅이란 땅은 한치도 안보일만큼 차들로 가득 찼고 들고나는 차들의 뒤엉킴으로 혼잡하기 이를데 없다. 관리요원들이 애는 쓰고 있지만 워낙 많은 차들에 치여 안쓰러울 정도다.
나는 밤중에 도착해서 일찌감치 주차면을 차지하고는 차안에서 잠을 잤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 덕에 제법 호젓하게 주전골을 올랐는데 하산길에서는 이와 같이 밀려든 인파와 뒤섞여 버렸다.
사람간 거리두기가 아예 불가능한 건 그렇다쳐도 이 와중에 역시나 마스크 안 쓴 사람들이 있다. 대개가 노인들이다.
나는 노인혐오증이 있다. 어른으로서 존경 받아야 할 노인들이지만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혐오가 안 생길 수가 없다. 나도 나이 먹어 그들처럼 된다면 젊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어도 싸다.
서울-양양간 고속도로 하행은 긴 주차장이다. 팔당 쯤에 다다랐는데 거기서부터 정체였다. 그때가 오후 한시. 저 사람들은 오늘 중으로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못된 심뽀가 발동해 고소한다. 나만 아니면 돼. 난 이미 다녀왔지롱. 이런 심뽀도 꼰대의 특성이 아닌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이 가을에 놓치지 않고 설악을 보았다는 건 아주 잘한 일이다. 수려한 이 대자연의 명품!
파가니니 : 카프리스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