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 소싯적에 인천의 어느 공장에서 일할 때였다.
볼일이 있어 사무실에 갔다. 큰 회사라 작업현장도 크고 사무실도 커 직원들도 많았다. 일을 보고 있는데 현장 노동자가 또하나 들어왔다. 책임자 중의 누군가에게 호출을 받고 온 것 같았다. 쭈뼛거리며 섰더니 딴에는 예의를 차리느라 그랬는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장갑은 쇳때가 묻어 새카맸다. 그 공장의 작업 특성상 장갑도 작업복도 시커먼 게작업자들의 일상이니 그들의 매골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 사람은 장갑을 벗어서 가장 가까이 눈에 보이는 책상에 얹어 놓았는데 책상의 주인인 사무직 아가씨가 행여 손끝에라도 닿을까 볼펜을 집더니 그 끝으로 시커먼 장갑을 책상 가장자리로 쓱 밀어 놓았다. 나 역시 시커먼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였다. 그 아가씨의 행동이 좀은 거슬렸지만 충분히 이해했다. 내가 사무직 직원이었어도 시커먼 장갑이 내 책상 위에 놓이는 게 반갑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 송 주임이 그 광경을 보았다. 현장 생산관리자의 한 사람이다. 성질이 불같이 괄괄해 오사바사한 맛이 없어 현장 노동자들도 그닥 살가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야 그게 더러워?”
송 주임이 아가씨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일순간에 사무실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다.
“씨발년아, 그게 더러워? 우리가 이렇게 시커멓게 검댕이 묻히고 일을 하니까 느덜이 예쁜 옷 입고 앉아서 에어콘 쐬어 가면서 편하게 일하는 거야! 저 사람들 없으면 느덜도 여기 사무실에 있을 것 같니 씨발년아!”
쩌렁쩌렁한 악다구니로 욕대기쳤다. 불의의 봉변을 당한 아가씨는 너무 놀라 첨에는 어안이 벙벙했다가 곧이어 책상에 엎어지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생각했다. 송 주임이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여 일을 크게 만든 건 나와 그 노동자 두 사람을 의식해서였을 것이로다. 즉, 이렇듯 자기는 현장 노동자들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일종의 쇼임이 역력했다.
처음 한순간은 솔직히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다. 나 역시 작업복과 장갑에 시커멓게 때 묻히고 일하는 노동자였다. 그러나 곧바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 아가씨 역시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일하는 부서가 달라 예쁜 옷 입고 에어콘 바람 나오는 곳에서 일은 하지만 작업 환경 말고는 우리와 다를 게 없었다. 아마도 월급도 우리보다 많지는 않을 것이었다.
송 주임이란 그놈은 나쁜 놈이다. 저 하나 잘나 보이겠다고 애먼 아가씨에게 그리 모욕을 주다니.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고용된 노동자들!
갑이 을한테 갑질 하는 것도 폭력이지만 을이 을한테 갑질하는 것도 못지않은 인권모독이다. 당하는 을에게는 후자가 더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오늘 노동절에 옛 기억 하나 들그서내다.
노동절이다.
메이 데이(May Day)라고 하는데 ‘메이 데이’라는 어감이 너무 감성적이고 문학적인지 않나? 노동자라는 이미지와 괴리가 있다.
예전엔 기업가와 보수성향의 위정자들에 의해 ‘근로자’라는 얄팍한 칭호를 하사받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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