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담장이 있는 풍경... 담양 삼지내

설리숲 2020. 4. 29. 23:31

 

최첨단의 문명을 자화자찬하며 기고만장하던 인류의 자존심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은, 기껏해야 미물에 불과한 바이러스에 속수무책 허우적거리는 꼴이라니.

 

이 봄에 우리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 많아졌다.

가까이 보듬고 껴안는 것이 진리만은 아님을.

적당히 떨어져 바라보는 것에 더 진실이 담겨 있음을.

중국의 경우 코로나 사태가 해제되고 나서 이혼 신청이 급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고 가족 구성원들간의 피로도가 쌓여간다는 뉴스를 접하는 요즘이다.

 

자만은 인간을 오만하게 만든다. 이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님을 자각하고 순수하게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속도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싶다. 고속 일변도가 아닌 멈춰선 세계.

 

담양의 한 골목길을 다녀왔다. ‘고샅이라는 이름의 전라도 특유의 풍경이다.

잠시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풍광.

 

삼지내 마을이다. 특별히 아름다운 마을도 아니고 그저 예전부터 주민들이 살아온 흔한 시골마을이다.

슬로시티란 슬로건으로 대외에 홍보하고는 있지만 관광객을 위하여 특별히 세련되게 꾸미지도 않았고

근래 유명해진 이 담장들은 사람 사는 모양 그대로다.

그래서 정겹고 아련하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던 사람의 정서는 그렇다.

 

느리게 걷는 것. 또 한없이 게을러지기.

언제부턴가 새로이 밀려 들어온 패러다임이다.

느림의 미학? 느린 게 아름답거나 정답일 수는 없지만 그 관형적인 어감만으로도 느낌이 느긋하고 편안해진다.

 

기술과학을 발전시켜 기껏 자동차를 만들어줬더니 이제와서는 걷는 게 좋다고 너도나도 걷기 열풍이다.

못 살아 주리던 시절 먹었던 거친 음식들을 이젠 웰빙음식이라며 비싸게 사 먹는 이상한 풍조의 시대.

결국은 과거가 옳았다는 것? 코로나 만연한 잠깐의 기간에 공기질이 확연히 깨끗해졌다 한다.

 

낯선 이방의 골목길에 서서 미물 바이러스가 우리를 일깨운 것들이 적지 않음을 생각한다.

낯선 이방이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이 정겨운 풍경들.

 

 

담양 창평면의 삼지내는 2007년 우리나라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삼지내는 월봉산에서 시작한 세 내()가 이 마을에서 모인대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유명세만 믿고 가면 실망할 수도 있다. 보통의 관광지처럼 포장하고 가꾸지 않은, 그저 나이 많은 평범한 주민들이 평범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마을이다. 다만 느리게 걷고 멍청하게 시간을 때울 요량이면 한번쯤 돌아보기 적당한 정도다. 특히 봄빛이 무르익은 이맘때.

 

 

 

 

 

 

 

 

 

 

 

 

 

 

 

 

 

 

 

 

 

 

 

 

 

 

 

 

허물어진 담장을 세련되게 꾸미지도 않았고, 여느 보통의 마을처럼 곳곳에 쓰레기 등이 너저분한...

그래서 더욱 정겨운 풍경들.

 

 

 

 

 

 

 

 

 

 

 

 

 

 

 

 

 

 

 

 

 

 

 

 

 

창평 면소재지로 들어가는 길엔 한창 물이 오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가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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