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승(唐僧) 상원대사가 신라로 건너와 계룡산 토굴에서 수행을 하던 어느 날, 뇌성은 천지를 요동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난데없는 큰 범 하나가 토굴 앞에 와서 공손하게 정좌하고는 대사에게 간구하는 표정을 보냈다. 입을 벌리고 있기에 대사가 보니 목구멍에 인골이 걸려 있었다. 대사가 뼈를 빼 주자 고통에서 벗어난 범이 큰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난 후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이 백설이 난분분 휘몰아치는 날에 전날의 범이 다시 나타나 무언가를 놓고 사라졌는데 웬 처자였다. 처자는 까무러쳐 정신을 잃은 데다가 추위에 얼어 있었다. 처자는 김화공이라는 상주 사람의 딸이었다. 범이 대사의 은공에 보답하고자 물어다 놓았다는 걸 짐작했다. 여러 날의 구완 끝에 처자는 생기를 찾았으나 한겨울 눈 쌓인 험산이라 돌려보내지 못했다.
봄이 되어 처자를 데리고 김화공의 집으로 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돌아오려 했으나 김화공은 기어이 딸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사실 대사는 범을 괘씸하게 여기고 있었다. 은혜 갚겠다면 좀 예쁜 처녀를 데려다 줄 것이지 어디서 천하 박색을 물어다 줬으니 섭섭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날이 풀리자 마자 집으로 데려다 주었는데 그 아비 뜨악하게 제 딸을 데려가라니!
여식이 행방불명이 됐다고 온 고을에 소문이 났는데 이제 스님이 딸년을 데리고 나타나셨으니 몸 버린 년이라고 어디다 시집을 보내겠습니까. 부디 박정하게 내대지 말고 여식을 거둬주십시오.
대략난감 대사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오랜 실랑이 끝에 다시 처자를 데리고 계룡산 토굴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겨울을 나는 동안 처자는 대사의 인품과 풍모에 흠모하는 마음을 가졌으나 차마 처자의 입으로 청하지는 못하고 혼자 마음만 달막였던 터다. 게다가 긴 겨울 한 철을 같은 처서에서 기거하면서도 처자를 다정스레 돌볼지언정 흑심에 찬 표정 한번 보이지 않은 대사의 고매한 성정에 그 사모하는 마음이 컸었다.
그랬는데 이제 다시 그와 돌아가 함께 살 생각을 하니 뛸듯이 기뻤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계룡산 토굴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처자는 대사에게 연정을 품었으나 대사는 그 마음 헤아려주지 못하고 의남매를 맺어 평생을 동고동락하자고 했다. 처자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으나 어쩔 도리가 없어 불도에 정진해 평생 수행하다가 함께 서방정토로 떠났다.
처자는 자신의 박색을 알지 못하고 스님이 고매하다고만 했고, 처자의 아비는 시집 못 갈 딸래미를 데려가 준 스님이 진정 부처님이었고, 덕분에 대사는 여색을 접어두고 불도를 닦는 데만 정진해 훗날 고승의 영예를 얻었다는 이야기. 동기는 범에게 있었지만 범이야 인간의 외모를 어찌 구별하여 판단할까. 다 그게 그거려니, 물어다 주면 좋아하려니 했겠지.
두 사람이 입적 한 후 대사의 제자 하나가 사라탑을 세웠는데 사람들은 남매탑이라고 불렀다. 계룡산 남매탑 이야기다.
남매탑 전설은 따로 있다. 정설은 진정 지고지순한 남매의 정으로 살다간 이야기다. 상원대사는 참으로 고매한 중으로 묘사했다. 그것도 어차피 지어낸 이야기지만.
위 이야기는 내 임의대로 윤색한 것이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중도 남자다. 홀로 오래 생활한 혈기방장한 사내가, 곱고 보드라운 처녀를 접했을 때 아무리 수행하는 자라도 목석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박색이라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전설은 언제나 훈훈한 정의로 귀결하는 속성이 있다. 스님은 늘 옳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여기는 계룡산인데 범은 왜 먼 상주까지 가서 처자를 업어왔을까. 계룡산 인근에도 인총이 많았거늘. '전설'이라는 것의 궁색함이다.
오래 전 문학동호인 모임으로 동학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나보다 훨씬 연상인 여인이랑 남매탑을 보러 가겠다고 오르다가 멀고 가팔라 도중 돌아왔었다. 비로소 이 봄 그곳을 갔다. 처음이자 필시 마지막일 게 뻔한... 단 한번의 남매탑 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