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돌아가신 이후 20년 이상을 생일이라는 걸 잊고 살았다.
그게 뭐 별거라고.
그 전부터 생일이라고 사람들 법석들 떠는 게 그닥 달갑지 않았었다.
그나마 누나가 문자를 보내와 깨우쳐주곤 하는 게 전부다.
주방 이모가 오늘 미역국을 끓이셨다.
거한 특식은 아니더라도 내 생일을 우정 기억하고 있다가 베푼 정성이 고맙지 아니한가.
다른 동료 이모가 슬쩍 다가와 축하해요, 하는데 고마운 덕담보다 먼저 민망이 앞선다.
그게 뭐 별거라고.
태어나는 게 고통이지요 머.
쑥스러워 기껏 대답한다는 게 그 모양이다.
농담이지만 기실 농담만도 아니다.
생로병사의 사고를 숙명처럼 안은 이상 생은 분명 고통이다.
이제 생로병사 중 생로병을 지났으니 내게 남은 건 사(死)다.
멸하고 나면 고통과 번뇌가 소멸할까.
아무튼 20년 이상을 잊고 지내던 생일은 마음 따뜻한 이모 덕분에 오늘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