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이니
저 건너 잔솔밭에
솔솔 기는 저 포수야 저 산비둘기 잡지 마라
저 비둘기는 나와 같이 임을 잃고 밤새도록
임을 찾아 헤맸노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고속도로 휴게소는 물론이고 대형마트나 터미널 따위는 보통 푸드코트(Food Court)를 병행 운영하고 있는 곳이 많다.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고, 혼자 주문해 먹어도 눈치 안 보이고, 오래도록 자리 차지하고 앉아 놀아도 눈치 안 보이는 장점이 있어 혼밥을 즐기는 내게는 참 편하다.
동서울터미널 건너 편 테크노마트에도 푸드코트가 있다. 마음이 안 좋을 때가 있다. 어디 음식점에 소속된 게 아니라 마트에 고용된 아주머니들이다. 본인들이 도시락을 싸온다. 한귀퉁이에 도시락 가방을 두고는 적당한 때에 풀러 먹는 것이다. 명색이 근무처가 ‘음식궁전(Food Court)’인데 밥을 못 얻어먹고 있다.
보통 식당에서 키우는 개도 밥이 아닌 사료를 먹고 있는 게 요즘의 세태라서 짠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이 둘이 오버랩 되는 건 나내 오지랖인가.
도피안사를 가려고 탄 철원행 버스에서 민요 <성주풀이>를 생각했다. 죽고 나면 그 뼈와 살이 흉물로 버려지는 건 다 똑같다. 인간은 낫고 못함이 없이 다 똑같은 존재인데 이승을 사는 과정은 그렇지 못하니 그 짧은 생애를 좀더 고상하게 지내보겠다고 그렇게들 아등바등한다 말이지. 그 찰나의 시간을 말이다.
철원 도피안사.
도피안(到彼岸)이라. 불교에서는 이승과 저승을 차안과 피안으로 말한다. 피안은 저 쪽 세상이지만 또다른 의미가 있다. 극락이다.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들어가는 열반의 세계가 피안이다. 종교가 혹세무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죽음은 곧 끝이 아닌 내세다. 기독교에서도 죽는다 하지 않고 하늘나라, 곧 천국으로 간다고 한다. 아무리 미화한들 죽음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물리적으로 유가 무로 바뀔 뿐이다. 그러니 삼성의 이건희나 나나 얼마 후면 똑같아지는 것이다. 살아 있는 지금이 벼슬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도피안사를 가보고 싶었다. 조촐하고 한적한 풍경의 도량일 거라는 추측을 했다. 실은 도피안이라는 이름이 마음을 끌었다. 피안에 도달한다니.
내 기대대로 도량은 참 소박하고 간결하다. 겨울이라 더 쓸쓸한지도 모른다. 몇몇 불자들이 드나들긴 하지만 깊은 겨울 하늘 아래의 고즈넉한 도피안사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발이 날릴 것처럼 잔뜩 내려앉고 마른 바람이 경내를 감돌고 나가면 마른 낙엽이 마당을 굴러 다녔다. 전형적인 겨울의 황량함이다.
유정은 내가 도피안사를 간다고 하니 그 절 주위엔 돌탑이 많고 그곳에 돌을 쌓아 얹으면 그 인연으로 스님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아, 그런가. 문학적인 모티프를 준다. 그렇지만 돌탑은 없다. 일부러 찾아 돌아다녔지만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유정은 다른 절을 착각했을 것이다.
모든 게 쓸쓸하다. 대웅전의 꽃무늬 문살과 신도들이 벗어놓은 신발이 그나마 천연색으로 화사하다.
김주영의 소설 <쇠둘레를 찾아서>에 철원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 나온다. 화천은 화천읍을 가면 되고 가평은 가평읍으로 가면 된다. 철원군은 있지만 철원을 가려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면 누구도 대답해 주지 못한다. 철원읍이 없다. 동송읍 갈말읍 김화읍 등만 있다. 철원의 중심지역은 동송과 갈말이다. 철원은 민통선 안에 있어 구철원이 되었고 갈말읍을 신철원이라 한다. 그러니 김주영이 철원을 찾아 헤맨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강원도 고성이 그렇다. 고성읍이 없이 중심지는 간성이다.
동송으로 가는 시외버스에는 역시나 군인들이 많다. 포천 연천 등의 변방지역들이 다 그렇듯이.
동송읍 풍광은 70년대에 그대로 멈춰 있다. 영화 <병태와 영자>나 <별들의 고향>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푸근하고 좋다. 너무나 빠르게 달려가는 이 세태가 진력난다.
자동차를 만지지도 않고 멀리서 시동을 켜고 에어컨과 히터를 작동하고 뒷트렁크를 열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운전도 안하고 앉아만 있으면 되니 도대체 사람이 하는 건 점점 없어진다. 이게 사람살이인가.
우리의 피안은 죽어서만 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