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떠나는 낙엽을 위하여

설리숲 2019. 12. 2. 23:57





상품이 되지 못하는 생명은 비정하게 버려진다.

생명사랑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지만 선택받지 못한 생명을 버렸다고 죄책감 가질 것까지야 있으랴.

 

밭에 숱한 생명들이 버려져 있다. 이미 썩어 침출수가 흐르는 더미 위에 다시 양배추를 쏟아 버린다. 향기롭지 않은 냄새도 진동한다.

 

그러나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냐.

죽어가는 양배추 속에서 다시 새 생명이 돋아나온다.

문득 불교의 윤회사상이 떠오른다. 이건 물리적인 윤회인가.

모든 생명의 속성이다.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

교수형을 받는 남자는 성기가 힘차게 발기한다고 한다. 몇 백 년을 살고 죽음을 앞둔 소나무는 실로 엄청난 솔방울을 달고 있다. 평생 꽃이 피지 않는 대나무는 최후로 단 한번의 꽃을 피우고 죽는다. 동충하초의 신기한 생태도. 

 

이런 맹목적인 본능이 경이롭다기 보다는 섬뜩하게 무섭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어떤 존재의 지배를 받는 것 같은.

연가시 유충이 침투한 숙주곤충은 펄펄 살아 있는 것 같지만 그의 일생은 몸속의 연가시의 의해서 조종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맹목적인 복종이 본질인 종교가 싫다.

 

밭에 버린 양배추를 이야기하다가 종교까지 비화해 버렸다.

어쨌든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를 바란다. 태어난 건 어쩔 수 없으니 죽는 거라도.

죽기 전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내 것이었으면.

나는 그것을 자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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