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우리의 광장은 어디로 갔나

설리숲 2019. 11. 25. 22:02


흙사랑살림터 주방 옆댕이에 간이휴게소가 있어요.
원래부터 있던 공간이었지만 활용도가 낮아 잡초만 무성하던 것을 작년 봄에 현규 씨를 비롯해서 일군의 멤버들이 등 넝쿨도 잘라내고 허술하나마 지붕도 덮는 등 공을 들여 쉼터를 만들었습니다.

시작은 창대하니 스스로 대견하여 쉬는 시간마다 나와 앉아 끽연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하며 한담을 나누곤 했지요. 옆에 선 일본목련은 커다란 그늘을 드리워 주었지요

그곳은 일종의 아고라였습니다. 그곳에서 조합에 대한 불만도 이야기하고 흙사랑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도 이야기하며 한 해 즐거운 여론을 만들었던 곳입니다.
어둠 내린 저녁에는 삼겹살을 굽고 쐬주도 까는 장소도 되었습니다.
여름밤 모기에 뜯기면서도 굳이 거기 나가 앉아 그러고 놀았고, 어느 날은 비가 쏟아지는데도 옷을 적셔가며 그러고 궁상을 떨었습니다. 여북하면 참 청승이다하고 내가 놀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딱 한 해의 추억이었습니다.
올해는 모여앉아 수다를 떤 기억이 없습니다.

 

장진우 팀장이 흙사랑을 떠났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맘으로도 오래 있을 것 같진 않겠다는 예감은 했었는데.
예감하지 못하게 갑작스레 떠나게 되니 참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미처 이별의 준비를 못해서였을 겁니다.
우리는 세상을 산다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바람은 사람을 만나게도 하고 헤어지게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실은 이 세풍에 휩쓸리는 것이지 우리가 주도하는 삶이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 팀장과의 이별을 무슨 연인과의 이별처럼 애틋하게 서술한 것은,
저 간이휴게소, 즉 우리의 아고라 광장의 주 방문자 내지 주도자가 진우 씨였습니다. 여론을 형성시키는 탁월한 재능이 있던 사람이어서 꼽사리 끼는 재미가 쏠쏠했었습니다.


올해 우리의 광장은 텅 빈 채 가을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화려했던(?) 한 때의 추억은 가슴 속에 수북이 쌓였는데
이곳은 시방 일본목련 낙엽들이 수북이 쌓이고 있습니다.
그가 없는 공간이 더욱 쓸쓸해 보입니다. 게다가 비마저 내려 갖고는.

11월은 이만큼 저물었는데.




               



막스 리히터 : 11월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픈 예감  (0) 2019.12.18
떠나는 낙엽을 위하여  (0) 2019.12.02
오늘은 그냥 퀸의 노래를 듣는다  (0) 2019.11.24
시월의 마지막 밤  (0) 2019.10.31
거좀 제대로 합시다  (0) 2019.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