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설리숲 2019. 9. 9. 00:35


우리나라의 중심 서울,

서울시청은 그 서울에서도 한가운데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신문사, 정부종합청사, 세종문화회관. 은행과 굴지의 대기업 본사들, 덕수궁과 경복궁, 그리고 박물관들.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을 총망라한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심장부다. 시청역은 그 모든 인프라가 모이는 핵심역이다.

 

지금의 강남처럼 조선시대에는 사대문안 사는 게 큰 유세였다.

 

나는 지금도 서울, 하면 사대문안을 떠올린다. 상경하면 그 곳이 가장 가고 싶고 재미도 있고 실제로 가장 자주 가는 곳이다.










부산에도 대구에도 대전에도 인천에도 지하철 시청역이 있지만 동물원이 부른 시청역은 꼭 집어 말하지 않았는데도 서울의 시청역임을 알겠다.

노래에 신문을 사려 돌아섰을 때 너의 모습을 보았지라는 가사가 있다. 그땐 그랬지. 지하철 역마다 신문가판대가 있었고, 전철 객실에서도 신문판매원들이 지나다녔다. 내 기억에 여자들은 거의 신문을 사 보는 걸 보지 못했다. 신문은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지하철에서는 또 거개가 스포츠신문을 보았다. 전철에 탔는데 선반 위에 스포츠신문이 떡 하니 얹혀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보고 싶은 신문이었는데 공짜로 볼 수 있었으니까. 그마저도 경쟁이 심해 내 차지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리고 최종 선반 위 신문들을 수거하러 도는 사람들까지.

이런 추억들을 소환한다는 것은 나이 좀 먹었다는 증거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닌데도 지하철의 풍경은 달라졌다. 가판대는 물론이고 신문 자체가 없어졌다. 전부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이곳이 서울의 원점이다. 삼천리 방방 길의 시작과 끝이다. 곧 우리나라의 중심인 것이다.

서울 원점의 최초는 일제가 지금의 이순신 동상 자리에 정했다가 교보빌딩 앞의 칭경기념비 옆으로 옮겼다.

현재 위치는 세종로 네거리 광화문파출소 앞이다. 이곳으로 원점을 옮긴 건 근래(1997년)의 일이다.















지방 촌놈인 내게도 시청역에 대한 편린이 있다. 어느 해던가 추석연휴를 제주도에서 같이 보내고 와서도 내내 서울서 지냈다. 그녀는 제 집으로 가서 자고 나는 모텔에서 자고 아침이면 다시 만났다. 그것이 좀 싫증이 났을까. 어쩐지 설렘이 덜해지고 서로에게 소홀하기도 하면서 이유 없이 짜증이라는 것도 냈다. 그녀가 집에 있는 여동생을 불러낸다고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나랑 있는 것이 재미없다는 눈치임을 알겠다. 이제 그만 놀고 집으로 가라는 말은 차마 못하는 걸 알지 모르나.

그러니 나도 화가 나서 이제 집으로 가겠다고 하고 헤어져 돌아섰는데 그곳이 시청역 12번 출입구였다. 지하철을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가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때 쪼잔하게도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유치하기도 하지만.

표를 사들고 2호선 승강장에 섰는데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직 전철 안 탔으면 다시 나오라는 거였다. 화는 났지만 그녀의 음성에 진심이 어려 있는 게 느껴져 다시 밖으로 나오니 그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미안하다고, 다시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고.

그녀의 여동생을 만나 명동성당에서 저녁을 보냈다. 여동생이 합류를 했는데도 서먹함은 가시지 않아서 나도 그녀도 유쾌하진 못했고 애꿎은 여동생만 분위기를 돋웠지만 그것마저도 티가 나서 헛헛한 밤이었었다.

 

며칠 있으면 또다시 추석이네. 올 추석은 일러서 들판이 아직도 파랗다. 추석 분위기는 예년보다 반감되는 듯.






김창기 작사 작곡 동물원 노래 :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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