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청주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설리숲 2019. 5. 27. 23:54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신록예찬>중에서







지금의 세종특별시가 아닌 옛 연기군 시절에, 조치원에서 청주로 가다가 맞닥뜨린 풍경이 플라타너스 길이었다. 짙은 초록의 나뭇잎이 터널을 드리운 그 광경에 연신 탄성을 질렀었다.

 

유년시절에 촌에서 춘천 시내로 이사 나오니 시내 도로는 플라타너스가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촌에서야 산내들이 눈만 들면 온통 나무들 천지지만 도시의 딱딱한 건물과 어우러져 선 나무들이 좋았었다. 학교에 들어가니 교정에 죽 늘어선 것도 플라타너스였는데 그땐 그 이름을 모르고 딱딱한 열매가 조롱조롱 달려 아이들은 꿀밤나무라 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춘천의 이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보면 자랐다. 그 영향인지 나는 지금까지도 가로수 중 플라타너스를 으뜸으로 친다. 잎이 넓어 커다란 그늘을 지우는 여름날의 플라타너스는 얼마나 매혹적인지 모른다. 그 장점이 반대로 단점이 되어서 교통표지판이나 이정표, 신호등을 가린다는 이유로 자주 가지치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가로수는 모름지기 플라타너스여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요즘 각 시마다 여러 가지 가로수를 심어 나름의 도시특색을 살리고 있다. 벚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마로니에 메타세쿼이아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검푸른 나뭇잎으로 터널을 이룬 청주의 가로수를 보았으니 그 경탄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곳은 아름다운 플라타너스들이다. 이미 명소로 알려진 지 오래다.

그런데 이 가로수길이 비주얼은 좋지만 막상 걷기는 좋지 않다. 세종과 청주를 연결하는 길인데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나와 청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 늘상 차량통행이 많다. 많은 차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니 소음이 무척 크다. 도저히 고즈넉하게 도보를 즐길 수가 없다. 그저 사진으로만 그 신록을 누릴 수 있








첫 폭염이 대지를 달구던 지난 주말의 풍경이다. 역시 황량한 겨울보다야 신록의 풍경이 훨씬 아름답다. 첫 여름. 이제 기나긴 혹서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어쨌든 지금은 푸르른 5월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스물





박인희 : 그리운 사람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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