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청산도 소릿길

설리숲 2019. 6. 13. 02:10



'소릿길'은 내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청산도 슬로우길이라고 하누만 그놈의 빌어먹을 영어 갖다붙이는 거 염증난다. 북악스카이웨이, 스카이워크, 서울타워...


































밤을 도와 완도항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청산도다. 안날 오후부터 제주와 해안지방에 폭풍우가 거세다는 속보가 이어지고 서울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청산도행 배는 당연히 출항이 안될 것이 뻔했지만 이미 충주에서 서울, 서울에서 광주, 광주에서 완도로 가는 버스표들을 예매해둔 상태라 그냥 가기로 했다. 청산도 못 들어가면 대신 다른 데로 가면 된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자다 깨다 개잠을 자고 선잠을 자고 비몽사몽간에도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이 어둠인데도 확연히 보였다. 폰을 들여다보니 청산도의 낮은 갠다고 알려준다. 그렇더라도 바람 때문에 배는 뜨지 않을 것이다, 아예 마음을 정리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 완도터미널에서 여객선터미널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는 있지만 가랑비 정도의 약한 비였다. 청산도는 포기했지만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러므로 바쁠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어 낯선 이방의 풍경들을 감상하며 한없이 늘쩡거리며 걷는다. 배도 출출해 어디 들어가 아침이라도 먹을 요량도 부린다. 그러다가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배는 모든 일정대로 입출항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곧 청산도로 갈 배시간도 5분 앞에 임박해 있었다. 여태 늘쩡거리던 마음이 그제야 다급해져 허둥댄다. 다행히 무사히 승선. 요즘은 승선절차도 간편해졋다. 예전에 배 한번 타려면 여러 가지 작성하는 것들이 잇어서 꽤나 번거롭고 더뎠다. 최소 30분 전에 도착해서 매표를 해야 했었다.


 

바다는 잔잔했다. 간밤의 기상 흔적은 아직 남아 잔뜩 무거운 하늘아래 먼 난바다에 밝은 빛이 둥개고 있었다.

푸르러서 청산靑山이라 했던가.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맑아지는 섬 청산도.

비는 말끔히 그쳐 있었다. 하루 종일 햇빛도 없었다. 당초 더울 것을 대비해 민소매 차림으로 떠나왔는데 햇빛 없는 날 바람이 부는 섬은 오싹하게 추웠다. 다행히 바람막이 자켓이 여분으로 있어 요긴하게 쓰긴 했다.

 

청산도 하면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관광객들도 보통 그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왔다가 그곳만 보고 가곤 한다. 유봉 동호 송화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는 장면을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한 돌담길이다. 그후 드라마 <봄의 왈츠> 배경이 된 덕에 유채꽃 넘실거리는 4월에 집중적으로 몰려드는 곳이다.

16년 전에 갔을 때는 모텔은 없고 민박집도 몇 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도처에 민박집이고 모텔도 여럿에다가 곳곳에 펜션도 자리 잡고 있다.

당리 공원과 그 인근만 다녀온다면 당일치기도 되지만 청산도가 꽤나 큰 섬이라 속속들이 구경하려면 최소 1박은 해야 한다.

블로그 등에 올라온 예쁜 사진들만 생각하고 온다면 약간은 실망할 수도 잇다. 청신도 뿐만 아니라 세계어는 유명관광지도 마찬가지다. 사진은 완전한 걸 보여주지 않는다.

 

청산도는 이름 그대로 청산이다. 사진으로 보는 예쁜 명소가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그곳에도 뭍과 똑같이 사람들 산다. 착한 사람, 어눌한 사람, 반지빠른 사람, 이기적인 사람, 성깔 고약한 사람들이 산다. 사람과 섬과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있을 뿐이다. 도청항에서 깊숙이 들어간 내륙과 동쪽 해안은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 호젓한 여행을 할 수 있다. 그저 번다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와 치유가 궁박한 이들의 힐링여행지로 삼으면 좋을 청산이라 해 두자.

 

하루 종일 섬과 바다는 햇빛이 내려오지 않았다. 가지고 간 우산이 몹시도 거추장스러웠던 날. 해라도 났으면 일산日傘으로 쓰기도 하련만 어정쩡한 날의 쓸모없는 액세서리의 민망함이라니.







김수철 작 : 소릿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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