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였다.
도끼날을 맞았든지 금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神通)하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었으며
임실 (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萬疊山中)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軟鷄湯)을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조개 있고,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요건 옹녀의 거시기 사설이요,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히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 서려는지 쌍걸낭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五軍門) 군뇌(軍牢)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뒷 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린다.
고추 찧던 절굿대인지 검붉기는 무슨 일인고.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다.
성정(性情)도 혹독(酷毒)하다 화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구멍이 그저 있다.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코는 무슨 일인고.
소년 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 떨구덩 끄덕인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낭 등물 세간살이 걱정 없네.
요건 강쇠의 거시기 사설이라.
수궁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와 함께 버젓이 판소리 여섯 마당에 속하는 가루지기 타령, 즉 변강쇠타령이지만 외설적인 사설 탓으로 좀처럼 연주되지 않는다.
변강쇠가 실존 인물은 아닌데도 함양의 지리산 자락에는 변강쇠와 옹녀 두 사람의 무덤이 실제로 있다. 대부분 그러하다. 근거가 희박한데도 지자체에서는 실낱을 찾아 제 고장 사람으로 후무리곤 한다. 남원 인월은 흥부와 놀부의 고장이 되었고, 백령도는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되었다. 광한루가 있으니 춘향전의 배경이 남원이라는 건 인정한다.
북에서 남으로 오던 옹녀와 남에서 북으로 가던 변강쇠가 개성에서 만나 연생연분되어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함양과 인월을 오가는 24번 국도 중간에 오도재로 오르는 샛길이 있다. 험준하고 가팔라 차도 힘겨워 하는 오르막길이다. 오도재 고갯마루에 휴게소가 있고 변강쇠 옹녀 무덤은 그 조금 아래 산기슭에 있다.
낙엽이 두텁게 덮인 가파른 오솔길을 허위허위 오르니 과연 봉분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있지도 않은 사람들의 묘를 만들어 놓았다.
변강쇠가 주인공이어야 하지만 이곳은 옹녀 세상이다. 화순 운주사에 곳곳에 산재한 불상처럼 벌거벗은 옹녀의 풍만한 나체가 여기저기 누워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원래는 서있는 조각품들이었다. 관리가 잘 안 돼 있어 지금은 죄다 바닥에 누워 있다. 풍만한 여체가 누워 있으니 한껏 에로틱하다. 어둑할 때는 등골 오싹하게 무서울 것 같다. 조각상 하나는 낙엽 속에 푹 파묻혀 젖과 골반만 노출되어 있다. 음문을 노골적으로 조각해 놓아 조금은 외설스럽기도 하다.
낙엽 속에서 봄은 어김없이 올라온다.
욕조에 누운 옹녀는 이렇게 기운차게 오줌을 분출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겨울이라 분수 작동을 안 하는 건지 관리가 안되고 있는 건지 지금은 더러운 차갑고 더러운 물에 그냥 방치돼 있다.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자 롤모델인 변강쇠.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는 법이라 그도 그 짓으로 최후를 마치는 걸로 이야기가 되어야 하나 엉뚱하게도 장승을 져다가 불 때고는 그 동티로 죽는다. 예상하지 않은 허탈한 최후다.
여자들에게 옹녀도 로망이자 롤모델일까. 모르겠다. 진정으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무려나 문학 속의 허구 인물이 세상으로 나왔으나 생물 아닌 사자로 무덤 안에 누워 있는 설정이 기구하다.
박동진 : 변강쇠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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