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송년음악회로 제야의 밤을 보내고 이튿날 박달산에서 새해 첫 저녁노을을 볼 요량이었다. 집에서 보면 저만치 늘 보이는 박달산이다. 유명세는 없어도 힘차게 뻗어 내린 그 자태가 자못 옹골차고 헌거로운 산이다. 괴산에 온 지 1년이 훌쩍 넘도록 가까이 쳐다보기만 했지 한번도 그 속엘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마음먹고 올랐던 길인데 맑던 날이 흐려지면서 들머리께는 눈발이 날린다. 골바람이 제법 세어 어지간히 춥기도 하다. 다음에 다시 들기로 하고 이왕 왔으니 임도만 잠깐 걷기로 한다. 들머리에 조금 더 들어가자 나무 쪼는 소리가 난다. 딱따구리다. 소리는 들리는데 보이지는 않는다. 가만히 멈추어 서서 동태를 살핀다. 가까이에 녀석이 보인다. 아주 작은 아이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쇠딱따구리다. 딱따구리 중에서도 가장 몸집이 작은 아이다. 참새와 거의 어금지금할 듯하다. 녀석이 쪼고 있는 나무도 휘추리 같은 가느다란 나무다.
눈발도 날리고 바람은 불고 날도 춥고 하여 이내 다시 내려온다. 포로롱 소리가 나서 보니 아까의 쇠딱따구리가 작은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며 포로롱거린다. 올라올 때 보았던 그 자리다. 춥고 을씨년스러운데 아이는 혼자다. 왠지 외로워 보인다. 생각해 보니 딱따구리 종류는 짝을 지어 있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녀석들은 언제나 혼자였다. 저 작은 새도 혼자다. 홀가분하여 자유로워 보이지 않고 가녀린 그 새는 측은지심이 인다.
들머리께로 나오니 저만치 개 두 마리가 나를 보고 있다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더럭 공포가 인다. 주인은 안 보인다. 만일을 대비하여 발끝의 나뭇가지를 슬며시 주워들자 사냥개도 으릉하고 경계를 하는 낌새다. 놈들도 서서 나를 감시한다. 여차하면 달려들 것 같아 오금이 저린다. 한참을 그리 서 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면 놈들이 달려들 것 같았다. 날은 추워 손발과 두 볼은 시린데 마냥 그렇게 있다가 동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그렇게 반갑고 그리울 수가 있다. 한참 뒤에야 주인이 나타나 나는 그 공포에서 벗어났다. 슬금슬금 녀석들의 동태를 살피며 지나치려는데 한 놈이 스윽 다가와 내 손에 주둥이를 갖다 대려 했다. 제 딴엔 친근함의 행동이겠으나 나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제발 개주인들은 각성하고 개 관리 좀 잘 했으면 한다.
마리안느 페이스풀 : This Little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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