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숲으로 업히러 간다
나이테는 나이테를
가지는 가지를 업고
마디가 굵은 생솔가지는 부엉이를 업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곤충들까지 휘어져라 업고 있다
싸락눈이 내리면 외진 길섶부터 차곡차곡 업고
언덕만큼 쌓이자 옹달샘과 골짝물이
이젠 내 차례야
이리 업혀 줘, 다투어 등을 내밀었다 그렇게
서로의 이름표를 업어주지 않았다면
서로의 체온과 서로의 슬픔을 업어주지 않는다면
바닥이 빛나는 것들을 업어주지 않는다면
어머니가 어부바 우리를 업어주지 않았다면
지금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으리
따듯한 등을 껴안지도 못하였으리
나 몸무게를 줄이고 자작나무숲으로 들어간다
별밤을 업고 있는 통나무집에
내 아이를 업고 잠을 재우는
여자에게 간다 여자가 업고 있는 세월이
어디 아이 하나뿐이랴
어디 바람 한 점뿐이랴
임의진 <바닥이 빛나는 것들을 업고>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오랫동안 마음만 있고 가보지 못했던 그 숲.
새하얀 눈이 내려 쌓여 있고, 햇빛은 발게 가득하고, 하늘은 청청하기를 바랐는데,
그래야 자작나무 수피가 빛나는 건데.
날은 흐리고 미세먼지는 최악.
여러 날 건조주의보가 발령돼 있는 터라 눈도 없고.
그래도 전에 내린 잔설이 깔려 있어 그나마 좋았다.
온통 자작나무뿐인 세계에 뜬금없이 선 나무 한 그루. 박달나무. 야가 이곳에 서 있는 데는 우리가 모르는, 또 알 필요도 없는 전설 같은 사연이 있을 테지요. 홀로 서 있지만 외로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이 기품이 맘에 듭니다. 남들이 예스할 때 혼자 아니오~ 하는 뻔뻔한 기개 같은 것?
인디언 수니 : 자작나무 숲으로 업히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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