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애인하지 말자”
강변북로를 말없이 드라이브하던 끝에 그가 말한다.
아, 이 말을 꺼내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일은 내가 감당했어야 하는데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말았다.
“여기서 젤 가까운 다리가 어디지?”
이별통보를 받은 내가 고작 한 말이 참으로 뜬금없었다.
영동대교 근처에서 나를 내려다 주고는 내내 그 자리에 서 있다. 행여 내가 다리 난간 위로 기어 올라가 허튼 짓이나 할까 불안했을 거였다. 도저히 정차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도로변에 선 그의 차 곁으로 차들이 무섭게 질주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한강물에 뛰어들까 불안했고 나는 그가 교통사고를 당할 것 같아 불안했다. 어여 가라고 손짓을 해도 움직이질 않는다.
문자를 보낸다. 나 괜찮으니 어서 가라고.
안심시키려고 사부작사부작 다리를 걷는다. 보지 않은 척 하지만 신경은 온통 그의 차에 가 있다. 그러고도 한참 후에 차가 움직인다. 얄궂게도 그가 갈 수 있는 방향은 영도대교를 건너는 길 밖에 없다. 나를 지나쳐서 가야 한다. 살면서 그 가장 난감하고 편치 않은 순간이었다.
영동대교에서 내려달라고 한 데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의 이별통보에 무슨 말이든 해야 했는데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름은 모르는 다리가 차창밖에 보였고 그게 영동대교였을 뿐이다.
내 어머니는 생전에 주현미를 좋아했다. 원래가 평생을 노래니 오락 따위와는 담쌓은 사람이라 어느 날 카세트에 들어 있던 <쌍쌍파티> 테이프를 발견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 주현미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 스타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게 <비 내리는 영동교>다.
글쎄다. 한강의 수많은 많은 다리 중에 영동교를 선택하여 노래를 만들었을까. 성수교는? 광진교는? 양화교는? 잠수교는?
어쨌든 영동대교에는 노래 소재로 삼을만한 특징은 없다. 그냥 철골에 시멘트 입힌 보통의 다리다.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하염없이 걷고 있네 밤비 내리는 영동교’ 애슬픔 섞인 이 곡조는 노래를 만들긴 해야겠는데 마침 생각나는 게 영동교였을 뿐일 테지.
비 오는 날, 롯데타워의 고층은 구름 속에 잠겼다. 과연 높긴 하다.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주현미 노래 : 비 내리는 영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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