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철이 끝났다. 개락으로 쏟아지니 일도 많이 하고 그 덕에 돈도 많이 생겼다. 그리고 열흘간의 휴가도 생겼다.
언제부턴가 맘속에 두고 있던 ‘여름휴가즐기기’를 실행하리라고 잔뜩 설렜다. ‘여름휴가즐기기’란 사람없는 한적한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며칠이고 뒹굴거리며 하루 종일 책만 읽는 거였다. 열흘을 다 쓰기로 했다.
우선 텐트를 샀다. 젊어 한때 배낭을 짊어지고 달팽이 생활을 한 적이 있어 기본적인 캠핑 용구는 있는 터고, 20여년 공백을 거치면서 텐트는 새로 장만할 필요가 있었다. 제법 돈을 들였다. 한 해에 세 번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은 절대 사지 말라는 게 세간의 충고였고 언제나 그 충고를 이행해 왔었지만 이번엔 눈 딱 감고 탈선을 한다. 단지 열흘간의 휴가를 위해. 아니다. 이왕 장만한 것 앞으로 여러 번 내내 쓰면 탈선도 아니다.
무게가 무거워 도저히 백패킹은 안 되고 차로 이동하기로 한다. 이젠 그만큼 나이도 먹었으니 젊은 날의 백패킹을 선망하지 않으려 한다.
여수 돌산도. 죽포 마을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여친은 왜 여수냐고 묻는다. 그냥 가장 먼 곳이라서 그런다고 답해 준다.
당연 괴리가 생겼다. 내가 꿈꾸던 곳은 인적 없는 고즈넉한 해변이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해변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해변에 사람이 없을 리 없고 웬만하게 생긴 해변엔 언제나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 참말로 후지고 더럽고 형편없는 풍경의 바닷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건 아니다. 게다가 텐트를 치는 것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캠핑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물을 얻어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또 샤워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배설할 화장실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그런 조건의 시설이 있으려면 최소한의 사람이 모이는 해변이라야 한다.
방죽포 해변은 아주 작고 풍경도 그리 아름답진 않다. 이름에서 보듯이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포구다. 그러니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장점이 있다. 아름답고 좋은 해변은 경포대나 해운대, 대천 같이 인산인해일 것이다.
어쨌든 그리 아름답지 않으니 인총이 많지 않은 장점이 있고, 최소한의 조건, 즉 급수대, 화장실, 샤워장이 있으니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데 그리 나쁜 건 아니다.
생래 가장 극악한 폭염의 나날이다. 바닷가 해송에 앉아 폭염에서 자유로운 시간을늘 보낸다. 망중한이 아닌 한중한의 날들이다.
가지고 간 책들 중 한설야의 <황혼>을 읽는다. 생소한 이름의 하설야는 카프문학의 소설가로 부르주아를 비판하는 프롤레타리아 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월북을 했고 따라서 우리에겐 그 이름조차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작가다. 내가 이 책을 선택했던 건 고 노회찬 의원의 서거에 말미암은 이유다. 고인의 생애와 소설 <황혼>의 일맥상통을 느꼈다.
“이 얼마나 유쾌한 풍경입니까. 노래도 부르고 웃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농담들도 합니다.
흉측한 남자들은 자맥질을 해서 물속으로 여자들을 쫓아다니고 잘난체하는 못난이들은 노를 저어 앞을 감돌며 헐궂은 유행가의 그물을 던집니다.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은 부표같이 머리만 동동 내놓고 두 손으로 세수를 합니다. 처녀들은 남 노는 멋에 빵긋빵긋 웃고만 있고 아이 난 중년여자들은 하마처럼 둥기적거립니다. 나먹은 이들은 송림을 거닐고 젊은 패들은 모래에 살을 구워 가지고는 누가 더 검은가 내기합니다. 도비다이를 곤두박질치는 이도 있고 뱃놀이에 곤드레만드레 주정뱅이도 있습니다. 체조하는 사람도 있고 달음박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소리 바람소리 사람소리 실로 형언할 수 없는 재즈입니다.”
소설에 현옥이 금강산 원산 온정리 등에 여름휴가를 가서 약혼자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이 소설은 1936년에 발표됐거니와 과연 거명된 이 지방들의 명성이 그때부터 자자했음을 알겠고, 무엇보다도 일제시대인 그때나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이나 여름 휴양지 해수욕장의 풍경과 서정은 똑같음을 알겠다.
어둠이 내리면 사람들의 소리가 사라지고 대신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커진다. 이런 해변은 밤에 고성방가가 없어서 좋고 무엇보다도 온밤을 쉬지 않고 터트려대는 빌어먹을 폭죽놀이가 없어서 좋다. 이슬과 함께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든다. 자연과 가장 가까운 시간이다. 떠나오기 전에 절대 업무 일로 전화하는 일 없기를 바란다고 명토를 박았다. 그렇지 않은가. 휴가 간 사람에게 전활 걸어 그 기분을 망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회사에서 전화를 한다면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에 와 있노라고 무질러 버리고 말테다.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서울서 여친이 와서 하루 놀다 간다. 과연 눈부신 문명은 이 먼 땅끝을 하루 생활권으로 끌어들였다. 고급 식당인 한일관에서 눈요기에 가까운 식사를 하고 동백나무의 상징 오동도와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는 여자만을 같이 구경한다.
여수는 옛 여천과 여수가 통합되어 큰 여수가 되었다. 여자만을 사이에 둔 고흥은 농업 중심의 지방이고 여수는 바다에 삶을 둔 지방이었다. 동양 최대의 산단인 여천석유화학단지로 인해 여수는 공업에 기반을 둔 도시가 되어 전라남도 GDP의 30%를 차지한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낭만적인 수식어를 붙이게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지만 실상은 공장의 밀집지대로 삭막한 도시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가 큰 히트를 치면서 이곳의 이미지도 차차 변해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낭만을 찾아 여수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직접 낭만을 자아내는 것이다. 현재 여수는 인디밴드와 버스킹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주말이면 서울서 유명 밴드들이 내려와 낭만버스킹이란 이름으로 이순신광장과 종포해양공원에서 버스킹을 한다. 이 지역 밴드들은 청춘버스킹이란 이름으로 웅천해변문화공원, 소호동동다리, 여문문화거리에서 버스킹을 한다.
대중가요 한 곡의 위력은 이처럼 도시와 문화를 천지개벽 완전히 변화시키는 엄청난 것이다.
마침 세계버스킹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과연 낭만과 젊음이 넘실대는 ‘여수 밤바다’다. 해양공원 일대는 서울의 신촌이나 압구정을 방불하게 사람들과 맥주와 열기들이 가득찼다. 피서철이라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한몫 보탰을 것이다.
장범준 작사 작곡 버스커버스커 노래 : 여수 밤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