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면 잠을 자고
해가 뜨면 잠을 깬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리듬인 것이다..
아직도 옷자락에서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던 장작 냄새가 난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해결하고,
신호가 오면 배설의 쾌감을 즐기고..
가마에서 팔팔 끓어오르던 물로 머리를 감고..
불어오는 자연풍에 내리 쬐는 태양아래서 머리를 말리고..
이런 평온함을 느끼게 해준 주인장께 너무 감사드린다..
고즈넉한 그 곳의 느낌을 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그렇게 만족스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니라..
바로 옆집 할머니가 아주 인상이 좋으셨다..
인사를 드리니 너무도 반갑게 맞아 주셨다..
다음에 인사드리면서 잠시나마 말벗을 해드리라 다짐했었다..
그녀의 인생길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음을 눈치 못 챈 채..
어느샌가 그 할머니 집앞에 하나둘 동네 차가 모이기 시작하고..
적막하던 그 산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할머니께서 이젠 훨훨 날아가고 싶으시다며...
다른 세상으로 가신 것이다..
이어,
상여가 만들어 지고..
하나둘 눈물지며 곡소리가 들려온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자니..
내 머리속은 백지가 되고.. 내 가슴에서 눈물이 흘렀다..
좋은 곳 가시라고 하고, 호상이라고 하는...
말벗이 되어 드리리라는 나의 작은 소망을 끝내 이룰 순 없었다..
까불까불 하던 그 집 노랭이와 흰둥이도 얌전하다..
인생..............................
마치 잘 짜여진 드라마 한켠의 배우가 된듯하다..
잊혀지지 않는 하루하루들...
딱히 특별한 딱히 한일도 없건만..
이렇게 인상 깊은 나날들이었다..
홀로 계신 주인장께서
부디 끼니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 건강하시기를...
잠시나마 그만에 리듬을 깨뜨린 건 아닌가 싶다..
이젠 날도 추우니 아궁이 불씨 죽이지 마시고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움이 사무친다는 말 평생 처음으로 느껴봅니다..
풍경소리가 그립습니다...
선희
오늘 삼우제를 지냈다.
맏상주가 와서 산소에 가자고 한다.
나야 아들도 뭐도 아니고 단지 옆에 사는 사람일 뿐인데 제사 지내는데 끼워 주니 조금은 송구하고 면목이 없다.
이웃에 살면서도 그리 살갑게 해드리지 못한 터라 면목도 없는데 이렇듯 나를 준가족으로 대해 주니 아마 앞으로도 남은 삼촌 잘 부탁한다는 의미도 있으리라.
스무골은 다시 적막 속에 잠겼다.
기실 서니가 왔던 때가 가장 사람이 많았던 날이었다. 이제 삼우제도 끝나고 숲은 또 일상으로 돌아갔다. 밤마다 서니의 잠을 방해하던 풍경소리마저도 오늘은 잠잠하다.
산에서 내려와 그 적막한 고요가 아까워 낮잠을 잔다. 한잠 달게 자고 나니 배가 고프다. 그녀가 만들어 놓고 간 반죽을 꺼내 부침개를 부친다. 맛있다.
내 여적지 수없이 많이 먹어 왔지만 오늘 부침개 진짜 맛있다. 다음에 또 만들어 달래야지.
숲의 생활은 이렇게 게으름의 극치다.
모르는 사람은 근사하고 멋있게 사는 줄 알지만, 실은 인간의 모습을 버려야 한다. 머리는 텅 비고 본능에 의해서 움직이는, 철저하게 짐승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제 곧 산골은 혹독한 추위가 온다. 한 마리 짐승은 그 겨울을 지내야 한다. 머리는 단지 그 혹독한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써야 하는 것이다.
초겨울의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골짜기를 내려다본다.
이제 갈 사람은 가고 또 새로운 사람이 그곳을 채우고, 세상은 돌고돌아 결국은 늘 제자리로 온다는 생각.
겨울이 저만치 와 있다.
서니씨 고마워.
2004. 11. 17.
정선 숲에서 지낼 때 이런저런 손님들이 많이 다녀갔다. 단지 숲속 오두막에 산다는 호기심 하나로 그 생활이 궁금했을 것이다. 혼자 적막하게 들어간 숲이거늘 실은 그 시절이 가장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
서니가 다녀간 후 쓴 후기를 다시 읽어보니 한편의 명상록을 대하는 것 같다. 인생이란 참.
나의 인생도 이만하면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잔잔하게 너울지는 나름의.
얼마 지나지 않은 그 시절이 아주 오래여서 어쩌면 전생에서 겪었던 일처럼 아득하다.
이듬해 어느 여름날 야생화님 미린다님 그리고 영원이 오두막을 찾아주었다.
이 분들이랑 참 많이도 돌아다녔던 시절이었다. 황금기였을까.
크리스티나 브랑코 : 아, 인생 (Ai Vi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