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성남 신해철거리

설리숲 2018. 2. 25. 21:49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 대학생 류준열은 대학교를 간 게 공부나 졸업장이 목적이 아니라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내 학창시절에도 위 학생과 똑같은 말을 하고 다니던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이 대학을 진학했는지, 진학해서 짜장 대학가요제 예선에 나갔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매년 가을에 열리는 대학가요제 본선에서 아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그 시대 대학가요제는 요즘 용어로 하나의 청춘 아이콘이었고 대회에 입상한 학생들은 곧바로 우상이 되었다.

  가요제 입상을 계기로 오래도록 대중의 스타로 남아 있는 이도 있고, 오로지 순수한 열정 하나만으로 대회에 참가했지만 이후 자신의 본연의 꿈으로 돌아간 이도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꿈의 대화>를 부른 두 젊은이는 화려한 추억만을 남기고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곧 사라져갈 짧은 청춘.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빛나는 젊음들. 그 한때를 화려하게 수놓고 명멸해간 사람들. 대학가요제가 우리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은 막대했다.

 

  초기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열정과 순수로 점철된 아마추어들이었다. 대회의 연륜이 쌓이고 입상곡과 입상자들이 대중의 스타로 자리잡으면서 처음의 순수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최측은 순수한 음악성보다도 훗날의 스타성에 치중하여 심사를 했고 참가자들 역시 대중의 스타로 나가기 위한 관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아마추어리즘을 상실한 대학가요제는 그 빛이 퇴색하기 시작하면서 되려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 대형기획사가 주도하는 엔터테인먼트시대를 맞으면서 그 명맥마저 이을 일말의 매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면서 역사를 마감했다.

 

  대학가요제 본선은 실제로는 방송을 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다. 본선 진출자를 가려내기 위해 심사위원들은 사전에 노래들을 다 들었기 때문에 이미 머릿속에 입상곡들이 다 정해져 있었다. 다만 방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일 현장에서 결과를 발표하는 게 프로그램의 상식이었다.

 

  1988년 신해철의 무한궤도도 그랬다. 이미 사전심사에서 <그대에게>는 뛰어난 실력으로 대상으로 낙점이 돼 있었고 아예 신해철을 스타로 띄울 생각이었다. 당시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무한궤도는 맨 마지막에 출연하였다. 피날레를 장식한 웅장한 팡파레라든지 다른 팀에겐 없는 무대 특수효과의 혜택을 주었다. 음악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에 그것만으로도 무한궤도는 특출난 팀으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대상을 차지했고 신해철의 음악인생이 시작되었다.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마인드를 지닌 신해철은 음악 뿐 아니라 사회학적인 면에서 대중에게 크게 어필되었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깊은 사려에서 나오는 냉철한 인식들을 적재적소에서 발산함으로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사람들은 그에게 마왕이란 칭호를 선사하며 성원하였다.

 

 















  그런 그가, 영원히 청춘일 것 같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불가사의한 사건이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도저히 일어나선 안될 의료사고사라니.

  나이는 어리지만 내 마음의 작은 영웅이었던 신해철이었다. 황당하고 불가사의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 게 이 세상이고 우리 인생이다. 그가 세상에서 할 일이 많았는데. 인생의 바람은 엉뚱한 운명을 우리들에게 안겨주곤 한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인생의 바람이 부는 대로 우리는 휩쓸리는 것이다.

 

  성남 수내동에 신해철거리가 조성되었다. 생전 그의 음악실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얼마나 더 조성할지 모르지만 지난 겨울에 가본 거리는 규모가 아주 작고 수수했다. 거창하지 않고 그냥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소담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조성중이어서 조형물들이 막에 덮여져 있다.








신해철 작사 작곡 노래 :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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