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안이었는데도 어인 일인지 버젓이 전축을 들여 놓았다. 추측컨대 큰형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 같다. 판을 사들이고 애지중지하는 것이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노래 <춘천댁 사공>을 접한 게 그 무렵이었다. 오래 됐지만 레코드자켓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분홍색 투피스의 이미자가 먼데를 바라보며 서 있고 의암댐이 배경 그림으로 구성된 자켓이었다. 옴니버스 앨범으로 춘천에 관한 노래들로 채운 호반과 춘천의 테마 음반이었다. 유명한 <소양강 처녀>도 이 음반에 들어 있었다. <소양강 처녀>도 이미자의 노래로 수록되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소양강 처녀가 이미자 노래인 줄 알았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노래방이 생길 무렵에야 이미자가 아닌 김태희가 원 가수임을 알았다.
춘천은 내가 나고 학창시절과 사회초년시절을, 즉 인생 전반기를 보낸 고장이다. 어디를 가도 춘천이란 말을 들으면 반갑고 설레게 두터운 덧정이 있는 도시다.
십년강산, 지금은 규모도 커지고 모든 시스템이 최신식화되어 있으니 어쩌다 한번 들르게 돼도 옛 정감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노래 <춘천댁 사공>의 노랫말을 만든 사연이 뱃사공이 되어 남편을 기다리는 서상리의 한 여인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류의 일화는 사실은 대부분 뻥이다. 아무 관련없이 지어진 노래가 인기를 얻으면 틀에 맞춰 사연도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작자가 고인이 된 후 주변 사람들이 지어내는 경우도 있다.
서상리는 서면이다. 춘천 시내에서 강 건너로 보이는 일대가 서면이다. 내가 춘천에 살 때는 그저 촌구석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눈에 빤히 보이지만 갈려면 춘천댐이나 의암댐을 거쳐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먼 곳이었다. 그렇게까지 가야할 일이 없으니 생애 전반기를 살면서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도시의 팽창과 함께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서면 일대는 금싸라기로 변모했다. 유명한 박사마을이 각종 매체에 거론되고 수도권의 거부(巨富) 내지 땅투기자들이 탐을 내는 곳이 되었다.
한참을 돌아가야 했던 교통사정도 신매대교가 놓임으로써 훨씬 간편하게 건너다니게 되었다. 이젠 갈 일이 많은 서면이 된 것이다.
위도는 한때 시민들의 행락지로 각광받던 섬이었다. 남이섬처럼 배를 타고 들어가 위락을 즐기던 곳으로 나도 한 해 이곳 위도훼밀리에서 근무했었다. 그 후로 위도 대신 고슴도치섬이라는 순우리말로 바뀌었다. 신매대교는 바로 이 고슴도치섬을 지나는 다리다. 다리가 생겼으니 굳이 배를 탈 필요가 없어져 도선료 수익으로 운영하던 위도훼밀리도 문을 닫았다. 지금은 옛 유원지의 흔적이 없고 풀만 무성하게 키를 재는 황무지 섬이 되어 있다.
의암댐과 춘천댐을 경유하는 호수 둘레길은 근래 도보여행 코스로 부상했다. 호수의 정취는 뭐니뭐니 해도 가을이 최고지만 고즈넉하고 쓸쓸한 겨울의 풍경도 아주 좋다.
이런 겨울의 정취가 좋다.
위도 유원지에서 근무할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행복했다는 생각이다. 말 그대로 화양연화의 시기였다.
<춘천댁 사공>은 이미자의 노래와 부르벨즈 노래가 같은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
배동욱 작사 백영호 작곡 부르벨즈 노래 : 춘천댁 사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