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명의 단편 <협궤열차에 관한 한 보고서>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작품에 나오는 문구를 글 쓸 때 여러 번 인용하기도 했다. 사라져 가는 수인선 협궤열차를 보는 작가의 애틋함이 가득했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수인선이 최첨단 전동열차로 돌아왔다. 돌아왔다고 말은 하지만 엄연히 이 기차가 그 기차는 아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전체가 다르다. 수인선이라 해도 수원이 아닌 오이도역이 시발역이다. 그러니 잃었던 추억이 돌아왔다고 자기 위안을 삼는 건 무리가 있다. 소설 속에서 작가의 말처럼 맺지 못한 사랑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사랑이라는, 소설 속의 작가의 말처럼 사라진 협궤열차는 그것으로 완성된 존재이며 그것은 전설처럼 우리가 기억하면 될 일이다. 지금의 수인선 전동열차는 전혀 별개의 또다른 사랑인 것이다.
소설을 읽고 협궤를 보러 가고 싶었으나 어찌어찌 하다가 못 가고 말았고, 이후 협궤의 흔적조차 사라져 버려 영영 못 보고 말았다.
경기 북부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는데 인천 남쪽 소래는 맑았다. 저녁에 뉘엿뉘엿 석양을 보여주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오면 포구의 어시장에만 득시글거리다 가곤 한다. 소래 여행의 진짜 참맛은 습지다. 다른 휴일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비가 내리고 약간은 을씨년스러워 습지에는 인적이 없다. 오히려 내게는 호젓한 산책길이 되어 자욱한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 좋았다. 습지는 내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주어 이외수의 소설을 생각나게 했다.
그 때문에 신발이 충분히 젖어들더니 양말까지 흠씬 적셔 영 불쾌했다. 날씨가 추웠더라면 꽤나 발이 시렸을 게다.
이윽고 한바퀴를 거진 다 돌고 나올 때쯤에 비가 그치더니 이어 환하게 햇살이 퍼진다. 이런 고약한 심보의 날씨 같으니라구! 첨부터 오지말 거나 아니면 나 떠날 때까지 계속 더 내릴 일이지 사람 발싸개만 죄다 적셔 놓고는.
햇살이 내리니 몽환적인 안개는 걷히고 칙칙하기만 했던 습지와 개펄도 색깔을 입는다. 그럭거나 말거나 나는 떠난다. 모르겠다. 이곳엘 언제 다시 오는 기회가 있을지는. 이 또한 인연 따라 흐르고 흐르다가 만나지겠지.
소래포구는 바가지라고 조명이 난지 오래다. 어시장을 둘러보는 주위 여성관광객들에게서 비싸다는 불만의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대부분은 서울에서 온 관광객일 테고 서울의 가까운 시장에서 사다가 막상 산지에 왔는데 동네시장보다 더 비싸니 당연히 불만일 것이다.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바가지라고 투덜거리는데 상인들은 다 귀에 들으면서도 눈 하나 꿈쩍 않고 소리 높여 호객을 해댄다. 우리가 비싸게 받는 게 뭐 어제 오늘이냐. 다 알면서 뭐 새삼스레 그따위 개갈 안나는 소리들이여.
그렇게 바가지라고 성토를 해도 소래포구가 이렇게 지속되고 있는 건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비싸다고 투덜대면서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가진 않으련다. 다들 한보따리씩 사들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기분 내는 걸 좋아하는 속성을 지녔으니까.
수산물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대체로 비싸다. 이런 상혼 옳지 않아.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이 인위적으로 간섭할 일은 아니니. 울며겨자먹거나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거나 할 밖에.
사람 즉 인류가 존재하는 한 소래포구 어시장도 존재할 것이다. 만약 이 바가지 시장이 사라진다고 하면 또 다들 옛 기억과 삶들이 없어진다고 감상에 빠져들 것이다. 바가지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다 잊고. 쓸모가 없어진 낡은 협궤열차를 애틋해 했듯이.
모든 것은 다 이와 같다. 그러므로 사라진 협궤열차와 전동열차, 그리고 포구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우리는 인생의 지침서를 하나 얻어 가게 되는 것이다.
정민나 시 김애영 작곡 김애영 노래 : 소래 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