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곤충채집

설리숲 2017. 10. 23. 23:27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학교 때 여름방학이면 꼭 들어 있던 과제 곤충채집과 식물채집. 선생님들은 그런 숙제를 왜 내주는지 그때도 그랬거니와 어른이 되고 한참 지난 지금도 모르겠다. 유년시절에 시골에서 자랐고, 도시에 나와서도 들판이 있는 변두리에 살았기에 문만 나서면 아니 울안에도 지천인 꽃과 식물들 그리고 곤충들인데 학교에서는 그게 뭐가 그리 중하다고 채집을 해오라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맘만 먹으면 메뚜기 잠자리 기름방개 죄다 싹쓸이해서 그 큰 교실을 가득 채울 수 있었지만 단 한번도 그 숙제를 해 본적이 없다. 원래 태생이 허구헌날 얻어터지면서도 숙제하는 걸 싫어하는 종자이기도 했고, 사실은 일종의 의구심 내지 저항심이 있었을 것이다.

 

 우등생, 예컨대 선생님으로부터 늘 관심 받는 아이들, 즉 집이 제법 넉넉한 아이들, 가끔 엄마가 학교로 찾아온다든지 아이들은 모르는 봉투가 건네졌다든지 하는 아이들은 - 그 아이들은 학기말이면 영락없이 우등상을 받았다 - 곤충채집도 정말 잘했다. 위 사진처럼 품격(?) 있고 정갈하게 제품을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었다. 도시의 학교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시외로 나가 곤충들을 잡아서는 잘 정리해서 저토록 근사하게 곽을 만들어 제출할 수 있다니! 관심 받는 아이들은 과연 다르구나. 큰 교실을 채울 만큼 잡아도 저렇게 포장하지 못하는 나는 그래서 평범한 관심 밖의 아이였구나.

 숙제를 하고 싶어도 저런 고상한 과제물을 낼 수 없는 한계를 어린 나는 인정했다. 저렇게 하려면 돈도 많이 들 테고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중에 추측하기론 저건 당연 엄마들이 어디 가서 돈 주고 사온 제품일 것이었지만 확실하게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

 그래서 여름방학이면 내주는 곤충채집과제는 나와는 상관없는 부잣집 아이들의 것으로 치부하여 관심에서 멀어졌다.

 

 아이들에게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을 부과함으로서 얻는 교육의 효과는 무엇일까. 뭐 자연과 교감하고 친화하며 그럼으로써 동물과 생명들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운운하는 도식적인 지침이 있을 테지.

 소중한 생명을 일깨우며 그 생명들을 잡아 핀으로 꽂아 죽게 하는. 교육에 대한 기본 철학이 있는가 의문이다. 아이들이 제출한 저 과제물은 어떻게 처리했을까도 의문이다. 받아 놓고 그냥 두었다가 버렸을 것이다. 고귀한 생명들은 어떤 이유나 명분도 없이 그저 허무하게 희생되었다.

 

 어제 모 초등학교 학생들이 1박2일 자연체험을 하러 왔다. 그중에 메뚜기 잡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지만 보는 나는 무척이나 씁쓸했다. 고귀한 생명에 대한 경시풍조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나는 교사가 돼서 생명의 경외에 가장 중점을 둔 교육을 하고 싶었다. 교사가 되지 못한 게 뒤늦게 안타깝다.

 

 며칠 전 최근 우리나라 국민들의 취미생활 선호도를 조사한 내용을 방송한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1위가 낚시라고 한다. , 남의 생명을 유린하는 게 취미라니, 그게 그렇게 재밌으니 우리는 진짜 무지막지한 살육광이다. 걸핏하면 미사일과 핵을 쏘아대는 북한정권 같은 집단만 폭력배라 감히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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