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꽃뱀을 옹호함

설리숲 2017. 9. 24. 02:11

 

  초록색 바탕에 붉은색과 검은색 무늬가 아름다운 뱀이다. 그래서 꽃뱀(花蛇)이라 한다. 본 이름인 유혈목이보다 일상적으로 불리는 이름이다.

 우리나라 산내들에 가장 흔한 뱀이다. 오랫동안 독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꽃뱀에 물려 화를 당했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뱀도 실은 치명적인 독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잘못 알려진 상식대로 만만히 대하다가 큰 봉변을 당하면 안 되겠다.

 

 그보다는 꽃뱀을 위한 변호를 해야겠다.

 왜 우리는 간교하지도 않고 폭력적이지도 않고 유혹하지도 않고 묵묵히 제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꽃뱀들에게, 더구나 인간들에게는 일말의 해도 끼치지 않는 그들에게 죄의 굴레를 씌우는지 모르겠다.

 

 남자를 유혹하여 등치는 여자들을 우리는 꽃뱀이라 한다. 종내는 인간과 가정을 말살파괴하는 악마 같은 년들이다. 년들의 수법은 다양하다. 술에 수면제를 넣은 뒤 지갑을 훔치는 수법은 고전이다. 남자에게 접근해 저녁을 사달라며 밥 한 끼에 수백만 원 물리는 레스토랑꽃뱀이 성업 중이다.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임신했다며 수술비로 100만원을 요구하는 임신꽃뱀도 있다. 불특정 다수의 휴대전화에 무차별로 알몸 사진을 보낸 뒤 답장이 오면 성희롱 했다며 돈을 뜯는 스마트꽃뱀까지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전문 꽃뱀만 있는 게 아니다. 직장인은 물론 대딩 고딩 꽃뱀까지 설치고 있다. 등록금이나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란다. 젊은 꽃뱀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남자를 유혹해 돈을 뜯어낸다. 꽃인지 꽃뱀인지 판단력이 어려워지게 만들고 있다.  

 몇 년 전 관가(官街)에는 세종시 꽃뱀 경계령이 내렸다고 한다. 중앙부처와 산하기관 공무원들이 세종으로 이주하던 시기였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자취생활을 해야 하는 외톨이 공무원들이 많아져 꽃뱀들의 좋은 먹잇감 대상이 되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상 순간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된다. 한 사람만 물어도 최소 3,000만원을 뜯어낼 수 있었다. 전국의 꽃뱀들이 세종시로 몰려들었다는 풍설이 있었는데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실제 당했다는 사람이 있는지의 여부도 알 수 없다.

 팔만대장경에 뱀은 유혹이요 애욕이다"라고 나온다. 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꽃나무 뿌리 밑에 숨어서 사람을 미혹시킨다.

  뱀이 억울한 굴레를 쓴 건 성경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믿고 있는데 불경에도 쓰여 있다니 부처에게도 허점이 있는 걸까.

 하지만 진짜 꽃뱀은 사람을 유혹하지도 다가오지도, 이유 없이 달려들거나 물지도 않는다. 그들은 사람을 보면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데 급급하다.

 죄 없는 꽃뱀을 인간들은 악의적으로 악마로 전락시켰다. 사람을 유혹하고 돈을 갈취하는 건 사람인데도. 한눈팔면 어느 결에 다가와 무는 사탄 같은 진짜 꽃뱀.

 

 

 

 

 

 



영화 <쉰들러 리스트> 테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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