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초록의 茶園에서

안녕 초록

설리숲 2017. 6. 21. 23:41

 

 

 

 

 

 이른 새벽에 일어나 차밭으로 올라간다. 언젠가는 꼭 한번 차밭에서의 해돋이를 보리라 스스로 다짐했는데 이제야 그 다짐을 실행한다. 마지막이라는 절박감이 몰아세운 탓일 것이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또 이후에도 기회가 있다고 여유를 부렸으면 역시나 미뤘을 게 뻔하다.

 

 

 이른 새벽이라 해도 이미 날은 밝아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맑은 새벽 공기가 가슴 안으로 들어와 가득 찬다. 일찍 일어나 자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장 행복하고 벅찬 희열이다. 알면서도 날마다 게으름만 피는 게 심히 부끄럽기도 하다.

 

 세상은 온통 초록 천지입니다. 아침이 열리는 차밭은 초록의 바다입니다. 만약에 나무와 숲이 초록이 아니고 다른 색이었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피로할까 생각하곤 합니다. 숲과 나무, 찻잎이 초록이어서, 싱그럽고 청초한 빛깔이어서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입니다.

 

 

 

 열두 해가 됐다. 내 전 생애 사분지 일에 해당하는 날들이다. 운명처럼 초록이 다가왔다. 그 인연은 다함이 없이 길래 이어질 것이다.

 비로소 어쭙잖게 차의 맛을 느낀다.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자칭 차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로 차를 찬미하곤 하지만 솔직히 글을 쓴다는 나는 차의 맛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겠다. 그냥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산등성으로 해가 오르고 여러 장 사진을 찍는다. 매일의 태양이지만 어제와 똑같은 해는 없다. 내 카메라에 담긴 태양은 오직 하나뿐으로 영원히 이날 새벽을 저장해 둔다.

 이심전심일까. 천 선생님이 올라오시고 재학 씨도 올라오고 수정 씨도 올라온다. 사전약속 없는 만남. 이른 아침의 자연과 함께 다과를 즐긴다. 뭐니 뭐니 해도 이른 아침 마시는 차가 가장 맛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공복에 마시는 차는 위벽을 헐고 속이 쓰리다 하는데 죄다 낭설인 것 같다. 아마 티백을 마시거나 잘못 만든 차를 마시고 하는 말이라 추측한다. 좋은 찻잎으로 잘 법제한 차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이런 차를 공복에 마시면 오히려 식욕을 더 돋워 준다.

 

 

 

 

 

 

 

 자연이, 초록이, 낭만이, 풍경이, 우정과 사랑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우리는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세상을 꿈꾸며, 자신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길 갈망한다.

 

 다선일미(茶禪一味).

 차와 선은 한 가지라는 걸 깨닫는다. 그간 반천계곡으로 찾아든 사람들은 죄다 선()하고 선()한 사람들이었다. 개성 강한 이들이 한 공동체 안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은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차로 맺은 인연은 이상한 것이어서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이후로도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것을 본다. 생래 선한 기질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인가 보다.

 

 

 

 

 

 

 

 

 

 

 

 

 

 열두 해의 세월이 담긴 유물이다.

 

 

 

 

 

 올해는 비가 뜸해 많은 사람들이 노심초사했지만 제다하기엔 적절한 가뭄(?)이어서 차의 품격이 퍽 좋았다고 자평해 본다. 계곡이 나날이 푸르러지고 하늘은 날마다 높고 청명했다.

 평상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며 쳐다본 하늘은 참말 What A Wonderful World! 감탄하게 파랗고 명징했다.

 

 유난히 하늘을 많이 본 봄철이었다.

 별을 좋아하는 마르티나 덕분으로 낮만이 아닌 밤하늘도 많이 올려다보았다. 자연과의 교감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 별과 함께 큰 나무를 좋아하는 마르티나가 그렇다. 나 또한 까만 밤의 별을 볼 때 문득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이 일곤 한다.

 

 

 

 

 

 

 

 

 

 

 

 

 다시 또 다원이 그리워질 테지. 오랜 날들을 보듬고 비볐던 만큼의 그리움이겠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만 초록의 인연은 그 반대일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축제를.

 서편 하늘의 마지막 석양을 찍고 싶었는데 잔뜩 흐린 저녁이라 고운 풍경을 볼 수 없어 아쉬움.

 고즈넉하게 어둠이 내리고 계절은 이미 깊어 모기들이 달려든다. 인연을 자축하며 정담이 흐르고 여름밤이 깊어간다.

 그리고 우리의 낭만도 서서히 저물며 다음을 기약한다.

 초록빛 나의 사랑도 불꽃으로 사르고 그와 함께 사그라진다.

 

 

 

 

 

 

 

 

 

 

 

 이 선한 아름다움들이여.

 이젠 안녕을 고한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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