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사도 안 모시고 명절 차례 또한 지내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차 밀리는 악조건에 굳이 수원엘 가지 않아도 된다. 여유로워졌다.
추석날에 익산 황등을 돌아본다.
나훈아의 노래 <고향역>은 크리스마스캐럴이나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등과 더불어 시즌송의 대명사다. 추석을 전후한 이맘때면 반드시 듣게 되는 노래고 노랫말처럼 어머니가 마른 손으로 적을 부치며 이제나저제나 기다릴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노래다.
임종수는 학창시절 황등역에서 기차를 타고 이리 시내로 통학한 추억을 떠올려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세월이 여류해서 황등역은 현재 폐쇄되었다. 건물만이 (그나마 이 건물도 옛것이 아닌 새로 지은 것이다) 휑뎅그렁하게 남아 있다. 황등역 뿐 아니라 이리역도 마찬가지다. 이리는 익산으로 바뀌었고 익산역은 KTX를 품은 첨단역이 되었다. 작가가 그 옛날 차창 밖으로 바라보던 그 풍경은 어디에도 없다. 하다못해 흔해빠진 코스모스도 이 구간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무명이었던 임종수는 이 노래를 들고 나훈아가 속한 레코드사를 찾아가 제발 좀 불러달라고 여러 달 간청했다고 한다. 그 결과 최고의 명곡이 되어 오래도록 사랑 받고 있다.
익산에서는 오래전부터 고향역 노래비를 세우려고 하고 있으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 내내 계획 중인 상태다.
황등면 주민들이 노래비를 황등역에 세워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작가 임종수도 그렇게 동의하였다. 익산시는 우리 지역을 홍보하는 효과도 있으니 이왕이면 익산역에 세우면 좋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황등 주민들을 설득하였다. 황등은 궁벽진 촌인데다 어차피 역도 폐쇄되었으니 관광객이 거길 찾아가기는 뭣하다는 나름 그럴싸한 명분이다. 그리면서 한편으로 익산역에 건립하는 프로그램을 몰래 진행하기도 했다. 더구나 임종수도 처음의 마음을 바꿔 익산에 세웠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러구러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로 이 사안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황등역과 그 일대를 돌아본 결과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볼 것도 없고 전국 어디에도 흔해빠진 평범한 시골이다. 오히려 가을 황금들녘의 풍경도 그리 전원적이지 않다. 작곡가의 추억으로 남은 그 서정은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린 듯하다.
익산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로 오면서 이어폰을 꽂고 이것저것 라디오를 듣는다. 날이 날이니만큼 고향이야기, 음식이야기, 어머니 아버지와 자식 간의 이야기들이 주 테마다.
“에미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하다”
부자 부녀 모자 모녀. 각기 특유의 띠앗머리가 있는데 가장 애틋한 건 역시 모녀지간이다. 모자지간은 군대시절의 엄마 생각이 그럴듯하지만 단지 그때뿐이고 전역하고 나면 싱거워지고 만다. 영원한 숙제와 이야기는 역시 엄마와 딸의 사이가 아닌가 한다.
엄마와의 갈등과 회한, 그리움을 적은 딸의 위 사연을 들으면서 절로 눈물이 흐른다. 주책이다. 나이가 들면 예전에 없던 현상들이 나타난다. 눈물이 많아지는 게 그 첫 번째다.
이럴 때 엄마가 생각난다. 그래서 그립고 눈물이 나는 것이다. 이제는 제사도 없고 차례도 폐했으니 나는 이제 형식이라도 엄마와 만나는 일이 없어졌다. 별것도 아닌 것이 왠지 마음이 허하다.
이거슨 그 유명한 야관문. 길섶에 있길래 찍어 보았다. 내 고향에도 이거 참 많았다
점점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리고 있다. 순리다. 명절에 대한 인식과 패러다임도 바뀔 것이다. 고향에 대한 절절함은 노래로 만들어 아쉬우나마 해결하였지만 앞으로는 그것마저도 사라지리라. 순리다. 어찌 순리를 막을 수 있겠나.
바야흐로 들판은 황금색으로 익어가고 하늘도 파랗게 높아지고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침잠한다.
임종수 작사 작곡 나훈아 노래 : 고향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