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80리 하동포구

설리숲 2016. 8. 26. 01:18

 

 

 

 

 

 

 

 

 

 

 

 

 올해는

 겨울 지나 봄까지 섬진강 가까이 살면서 봄이 오는 정경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었다.

 

 수시로 80리나 된다는 포구로 나가 물새들을 보았고, 쌍계사 칠불사 부처를 알현하였으며 눈 맞는 차밭을 보았다. 유붕자원방래하여 멀리서 온 친구를 맞아 찻집에 앉아 을씨년스런 창밖 풍경을 감상했고, 포구 건너 섬 남해에서 받아온 짭쪼름한 멍게도 씹었다. 눈처럼 날리는 광양의 매화꽃잎과 화개 벚꽃, 그리고 그 아래 물결치는 인파의 물결도 겪었다. 또한 윤슬 반짝이는 강상에서 재첩을 걷어 올리는 풍경, 업소 수조마다 가득한 은어까지.

 

 미지의 세계처럼 선망하던 곳도 일상이 되면 그저 평범한 곳이 되기 마련이다. 다만 계절이 바뀌면서 느껴지는 감성만은 섬진강 물인 양 아련하게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지리산의 장엄한 기품과 함께였다.

 

 

 언제나 노래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하동포구는 노래처럼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새로이 짓고 허물고 산업동력의 허울을 쓰고 날마다 어디선가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하동읍에서 화개로 가는 국도는 환경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4차선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악양까지는 완공되었다. 1년 내내 교통량이 별로 없는 이 구간을 봄철 벚꽃 개회시기에만 반짝하는 관광객 때문에 확장을 해야 한다고. 그 덕분에 고즈넉하고 조촐한 강변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사라져 버렸다.

 세월의 속성이야 모든 걸 변하게 하는 거지만.

 노래 속에 나오는 돛단배는 포구를 드나들지 못하고 모조품으로 박제되어 덩그러니 서 있다.


 강을 죽이는 건 인간이고, 그들은 죽일 수는 있어도 살릴 수는 없다.

 

  골골이 내려온 물은 여전히 흘러 강마을을 적시고 우리들 마른 가슴도 적시고 바다로 나가고 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을에도 가 봐야겠다. 차나무의 꽃도 보리라. 거처를 진주로 옮겼으니 시간 거리가 훨씬 여유로워 좋다.

 

 

 

 

 

 

  

 80리 포구는 남해 바다에서 화개까지 이른다. 가끔 사진에서 보듯 옛날에는 황포돛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삼천포나 광양의 해산물을 싣고 강을 소회하여 화개에 풀어 놓고는 산청이나 구례 남원의 산물을 싣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삶의 애환이 오래도록 풀어 헤쳐진 하동포구다. 그리움과 연민과 눈물과 사연이 강물을 따라 오르내리던 시간들은 이제 사라졌다. 지금은 재첩 잡는 머구리배 하나씩 어쩌다 눈에 띌 뿐 배를 타고 오르내리는 생활은 이미 과거의 풍물이 되어 버렸다. 애절한 사연을 안고 정인을 그리워하는 아가씨도 이젠 없으리라.


  남도여행을 할 때 광양에서 섬진교를 건너면서 처음 본 하동읍의 전경이 평생 잊히지 않는다. 아 언젠간 여기 와서 살아야겠다. 그리고 둘러본 송림도 정말 근사하고 멋졌다. 실제로 그후에 하동에서 한 해를 살았었다. 그러면서 참으로 많이 글을 썼었다. 그땐 정말 치열했었는데 돌아보면 참으로 허무하고 부질없는 나날이었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송림도 이제 보면 그저 그렇다. 그냥 소나무 몇 그루 서 있는 평범한 숲에 지나지 않는다. 소나무숲이야 내 지금 사는 이 골짜기가 훨씬 빼어나다.


 

 

 

 국민학교 시절 하춘화의 이 노래 <하동포구 아가씨>를 많이 듣고 자랐다. 노래는 좋았어도 가사에 나오는 섬진강이니 쌍계사니 하동포구니 하는 것들은 먼 나라의 것이어서 무심했었는데 세상을 돌아보는 눈이 뜨이니 아, 섬진강이구나 지리산이구나 하동이구나 비로소 노래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내년 봄이면 나는 또 행장을 차려 섬진강을 찾을 것이다. 가서 고독하리라.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하춘화 노래 : 하동포구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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