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요람기

설리숲 2016. 9. 5. 01:07

 

 가을이 깊어지면 비알 밭이나 논배미 등에는 여기저기 낟가리들이 쌓여 있곤 했다. 이 낟가리들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숨바꼭질은 기본이고, 하얗게 서린 내린 초겨울 추운 날에는 짚단을 빼내어 따뜻하게 불을 지피고 놀기도 했다. 타닥타닥 타면서 채 털리지 않은 벼 싸라기가 익어 튀면 새가 모이 쪼듯 주워 먹는 재미도 있었다. 그 속을 파고 들어가 안락한 아지트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어른들이 보면 무지하게 혼들이 났다. 정월 보름께는 이것들로 달맞이놀이를 하기도 했다.

 

 유년의 아이들은 시골에서 놀 거리가 별로 없었다. 10대 형들은 몰려다니며 천렵도 하고 겨울밤이면 어느 집 방에 모여 앉아 뻥을 쳐서 과자나 빵 등을 사다 먹는 재미를 누렸다.

 인총이 드문 산촌은 마을의 개념이 희박해서 여기 한 집 저만치 한 집 떨어져 있었다. 우리 또래의 아이들이 몇 명 되지도 않았고 어린 아이들이라 큰애들처럼 마실을 다닐 수가 없었다. 보통은 집에서 엄마나 누나들을 졸라대며 생떼를 쓰거나 혼자 논두렁밭두렁 등을 한갓지게 쏘다니곤 했다.

 

 아이들의 놀이는 참말 유치하다. 그때는 재미 지던 놀이들이 어른이 되면 하나도 재미가 없다. 짚낟가리에서 불을 피우고 놀면서 참깨줄기를 꺾어 불을 붙여서는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뻐끔뻐끔 어른들 담배 피는 흉내를 내었다. 그럴 때 파랗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짜장 담배 같아서 아이들은 행복해 했다.

 여름철 풀이 무성할 때 어느 곳이든 수크령이 많아서 풀끼리 묶어 놓기를 즐겨 했다. 어느 누가 지나가다 묶은 풀에 걸려 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 또한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걸려 넘어지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처음엔 누가 지나가나 멀리서 훔쳐보지만 인구도 별로 없는 산골에 하루 종일 있어 봐야 한 사람도 지나가기 어렵다. 시들해져 버려 곧바로 그 일은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울타리에는 콩이나 호박 등 넝쿨식물들이 올라가 무성하게 덮여 완벽한 담장을 이루곤 했다. 호박꽃에는 벌들이 드나들었다. 아이들은 벌이 든 꽃을 오므려 땄다. 따서는 그냥 버렸다. 단순히 벌을 가둔 꽃을 따는 게 목적이었지 벌을 잡아 무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것도 어른들한테 보이면 지청구를 들었다. 호박이 열릴 꽃이었다.

 

 아이들은 다른 생명들에게는 악독한 존재였다. 개구리를 잡아 밀 대롱을 그 똥구멍에 넣고 바람을 불어 넣었다. 개구리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풍선처럼 되는 것을 즐거워했다. 장난친 개구리는 버렸지만 고통을 당한 개구리는 아마 하나도 살아나진 못했을 것이다.

 잠자리는 시집을 보냈다. 잠자리를 잡아서는 꽁지를 반 잘라내고 가는 나뭇가지를 박아 날려보냈다. 시집보낸다고 좋아들 했지만 신체가 잘리고 대신 무거운 이물질이 박힌 잠자리는 포르륵 날긴 하되 멀리 못가고 가까운 풀더미 위로 힘겹게 내려앉곤 했다.

 

 세상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산내들에 지천인 뭇 생명의 귀함을 알 리가 없었다. 어른이 돼서 돌아보면 큰 벌을 받을 짓을 많이도 했다. 반성만으로 끝낼 일은 아닌 큰 중죄를 짓고 살았던 것이다. 나는 만약 자식을 낳았다면 인간과 다른 모든 존재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일러주는 교육을 중점적으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과 어른들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질 않았다. 어린아이들만큼 그들도 무지하고 어두웠다. 그까짓 잠자리 따위가 뭣이 중헌디.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 게 그네들의 사는 목적이었다.

 

 

 아이들 간에는 미신적인 속설들이 있었다. 아이고 어른이고 손가락에는 왜들 그렇게도 사마귀가 많이 났는지. 사마귀는 잘 못 먹고 잘 못 씻는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일종의 가난한 후진국형 종기는 아닐까 근거 없는 추측을 한다.

 사마귀는 사마귀를 잡아다가 떼어 먹이면 떨어진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러나 사마귀를 잡아다가 종기에다 갖다 대고 아무리 얼러도 녀석은 좀처럼 그것을 물지 않았다. 누구도 사마귀로 사마귀를 떼어내는 걸 본 적 없었지만 아이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그것을 굳게 믿었다.

그보다는 좀더 믿을만 한 방법이 있었다. 오이 꼭지 부분은 써서 평소에도 안 먹고 잘라 버렸다. 그냥 버리지 말고 이걸로 사마귀에 흠뻑 발라 주고 땅에다 묻는다. 묻은 오이 꼭지가 썩으면 사마귀도 떨어진다고 했다. 이게 훨씬 더 신빙성 있다. 왜냐하면 오이가 썩을 만큼의 시간이면 자연 사마귀도 없어지니까.  

 

 또한 그때는 걸핏하면 입가에 버짐이 일었다. 진물도 나고 아프다. 밥 먹을 때 입을 벌리기가 불편했다. 어른들은 입이 커지는 것이라고 오히려 축하를 해 주었다. 아이들은 진정 그렇게 알고 자랐다. 어쨌든 한동안 불편하게 지내면 드디어 다대가 앉고 멀쩡해졌다.

 입 버짐과 더불어 눈 다래끼도 무시로 났다. 눈시울이 퉁퉁 부어 발갛게 열이 나고 눈물이 흐르고 쉴 새 없이 눈곱이 끼었다. 다래끼 난 아이는 다른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다. 쳐다보면 옮는다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으려 했다.

아이들 간에 이 다래끼 치료법이 있었다. 눈썹을 뽑아서는 돌무덤을 쌓아 그 속에 눈썹을 넣어 두고 기다린다. 누군가 지나가다 그 돌무더기를 차거나 밟아 무너뜨리면 그 사람에게 다래끼가 옮아간다고 했다.

 나도 한 번 그것을 해 보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인구가 적은 산골 특성상 누구도 그곳을 지나가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역시 그 일을 까맣게 잊어 먹었다.

 

 

 봄철에 오랑캐꽃이 피었다 지고 씨방이 생기면 아이들은 그것을 따서 열어 보곤 했다. 씨방 속의 알이 까만색이면 풍년이고 하얀색이면 흉년이라고 나름 그 해의 길흉을 점쳐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씨가 여물었으면 당연 까만색이고 덜 여문 씨방을 땄으면 당연 하얀색이니 아이들의 놀이는 참으로 유치한 것이다.

 

 속요와 함께 하는 놀이는 더 재미있다. 수박풀을 뜯어 손바닥을 때리면서 수박 냄새 나라~ 참외 냄새 나라~’ 주문을 외면 진짜 수박 냄새도 나고 참외 냄새도 났다. 이건 진짜다. 지금 들판에 나가 수박풀을 뜯어 실험해 보라. 우리는 수박풀이라 했지만 정식 이름은 차풀이다. 생채기를 내면 수박냄새와 참외냄새가 난다.

 쇠비름을 뽑아 그 뿌리를 두 손가락으로 훑어 내리며 각시방에 불켜라~ 신랑방에 불켜라~’ 노래하면 뿌리가 빨갛게 변했다.

 

 

공식 이름은 차풀이지만 우리는 수박풀이라 했다. 수박풀은 따로 있다.

 

쇠비름. 뿌리를 훑어 내리면 붉게 변색한다

진짜로 각시방에 불을 켠듯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유년시절의 놀이는 유치하지만 다양했다. 말 그대로 아이들의 놀이였다. 그때는 재미있는 것들이 어른이 돼서는 하나도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순수한 동심을 잃었다고 푸념할 필요는 없다. 어른이 되면 또 그 나이만큼의 재밋거리가 놓여 있다. 소싯적에 마흔이 넘고 쉰이 넘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나이쯤 되면 그때는 몰랐던 관심사가 생기고 또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재밌을 때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이에 연연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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