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모란이 다 떨어져 버린 날... 영랑 생가

설리숲 2015. 6. 17. 00:47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풀 아래 우슴 짓는 샘물가치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오날 하로 하늘을 우러르고 십다

  새악시 볼에 떠르는 붓그럼가치

  詩의 가슴을 살포시 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싶다

 

 

 북정식남윤식이라는 말이 있어 '북쪽엔 김소월이요 남쪽엔 김영랑’이라 할 정도로 한국 문학사에 위대한 업적을 쌓은 시인이다.

 1930년대 <시문학>을 중심으로 예술을 발산한 작가들이 있었고 김영랑은 그중에서도 백미였다.

 오직 시를 위한 시, 문학을 위한 문학을 추구하여 정치와 사회에 대하여 철저히 외면했던 작가군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일제의 수탈이 극악무도해 가던 식민지 그 시절에 오직 자기들만의 딜레당트 취향을 누리며 민족의 아픔을 외면했다는 비판이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에 보내는 같은 차가운 시선이다.

 고운 시어로 빛나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어 가장 영롱하고 순수한 예술을 지어냈으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까닭이 그렇다.

 그러나 어쩌랴. 그렇더라도 그들의 시는 너무나 아름다워 그것들을 부정하여 들어내 버려서는 한국문학의 어느 한부분이 비어 버리는 것이다. 서정주가 만인공노의 친일을 했어도 그의 작품들을 매장시킬 수는 없듯이.

 

 

 

 

 

 

 

 

 

 

 강진으로의 여행은 보통 두 군데를 가게 마련이다. 백련사를 포함한 다산초당과 영랑생가.

 두 곳 다 여러 번을 갔었다. 매번 봄철이었다. 어쩜 다른 철엔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모란과 동백, 그리고 차가 있는 봄철이어야 될 것 같다. 그런데도 영랑생가의 모란꽃은 한 번도 보질 못하였다. 이번에 때를 맞춰 간다는 게 역시나 맞추질 못하고 모란은 이미 다 져 초여름의 더위에 푸른 이파리만 맹렬하게 퍼들거리고 있었다.

 

 아 그렇군.

 봄이 왔나 싶었더니 어느 결에 끝나 버렸다.

 

 뭐 시인처럼 봄을 여읜 슬픔에 잠길 리도 없고 오월 어느 날 뚝뚝 떨어져 버린 모란꽃이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삼백 예순 날 마냥 섭섭해 울 일도 아니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이지.

 

 

 

져 버린 모란은 회벽에 걸린 그림으로 대신 감상한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 모르겠다.

 

 

 

 

 

 

 

 영랑생가를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은 다 똑같다. 시비랑 초가지붕, 모란, 나무대문, 돌담…… 나도 그렇다. 특별히 다르게 찍을 만한 게 없다.

 

 때를 놓쳐 모란꽃잎을 보질 못해 약간은 서운해 하며 나왔다가 이웃집 토담 아래서 역시 나처럼 때를 놓친 모란 두어 송이를 보았다. 그날 저녁이면 떨어져 버리게 그도 이미 생을 다하여 시들고 있는 중이었다. 애잔한 슬픔을 본다. 화려한 날들의 끝은 모두가 그러하니. 짜장 모란에게 있어 찬란한 슬픔의 봄이 아닌가 싶다.

 

 

                      김영랑 시 안치환 작곡 안치환 노래 : 모란이 피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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