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초록의 茶園에서

할매

설리숲 2015. 5. 11. 22:12

 

 

 할매 한 분이 처음으로 차를 따 가지고 왔다며 쭈삣쭈삣 찻잎이 골막하게 담긴 소쿠리를 들고 들어왔다.

 첫눈에 보기에도 찻잎이 그리 좋지 않다. 차의 품질을 가름짓는 찻잎이라 받아 줄 수가 없다. 찻잎 한 소쿠리면 손자들 용돈 줄 정도의 수입이 되는지라 봄 시즌이면 근동 주민들은 너도나도 찻잎을 따 다원에 들고 와서는 돈을 사가곤 한다. 

 마음이 약해지는 걸 강력하게 추스리고 안 산다고 매정하게 돌려 보냈다. 그 뒷모습이 몹시 짠하다. 일껏 하루 노동으로 따 채웠을 저 소쿠리.

 

 얼마 있다가 다원 주인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그 할매 집을 찾아간다. 찻잎은 형편없지만 손해 보는 셈치고 사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았다.

 가서 할매를 찾으니 할매는 부리나케 화장실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니 화장실 바닥 변기 옆에 아까의 그 찻잎이 널려 있다. 기껏 들고간 찻잎을 퇴짜 맞은 것도 속상하고 그렇다고 귀한 그걸 버릴 수도 없고 딴엔 집안에서 가장 서늘한 곳에 보관하려 한게 화장실이었다.

 다원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작설차를 사겠다고 말한다. 지갑에서 돈을 쳐 주며 할매 내일도 가 오세요 할매는 더 쳐 드릴게요 한다. 그러니 화장실에 널어 놓지 마시고 따는 대로 바로 가 오세요.

 그까짓거 손핼 보면 얼마나 손해본다고... 어차피 차를 만드는 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차를 먹이고자 하는 봉사심인데 꼭 차를 먹이는 것만이 봉사는 아니지.

 다원 주인은 공연히 기분이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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