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여 운이 좋으면 채택되어 노래를 들었는데 그건 하늘의별따기였다. 전축이라는 게 있어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는 있었지만 가난한 서민들에게 그것 또한 언감생심이었다. 카세트가 널리 보급되고 테이프에 선호곡들만 모아 녹음하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음악의 대혁명이라 할 수 있는 콤팩트디스크가 탄생하였다. 컴퓨터의 저변화로 인터넷상에서의 무한감상과 음원시스템으로 변화가 있었고 최근 무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CD는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과학문명이 없던 옛날에는 어땠을까 상상해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연주장에 가서야 음악을 들었을 테니 그런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더구나 난이도 높은 긴 클래식음악을 듣고 흥얼거릴 주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흐의 음악을 모차르트의 음악을.
따라서 유추해보건대 대중음악은 민중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즐겼을 테고 각 민족들은 그들 고유의 민요들을 가졌을 것이다.
오래도록 이어져온 이런 향유문화에 대혁신이 일어났는데 바로 축음기의 발명이었다. 이 최첨단 문명기계로 인해 사람들은 좋은 음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게 되었고 비로소 인기곡과 비인기곡의 구분이 생겨나며 유행가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에디슨의 축음기로부터 시작하여 레코딩은 발전을 거듭하지만 초창기 테이프레코더는 긴 음악을 담을 수 없었다고 한다. 기껏 5분 분량 이내의 음악만을 레코딩했기 때문에 가령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1악장만 듣는데도 4번이나 테이프를 바꾸어 넣어야 했다.
이런 약점으로 인해 작가들은 그때부터 짧은 음악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엔리코 카루소는 오페라 아리아나 이탈리아 가곡들을 녹음해 축음기의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선구자격이고, 유명한 프리츠 크라이슬러 또한 <사랑의 기쁨><아름다운 로즈마리> 등 5분 이내의 짧은 바이올린 곡들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방송국이 개국하면서 비로소 음악은 대중화가 되었다.
전축과 LP레코드시대가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지금의 CD(compact disc)가 있기까지의 역사가 대충 이렇다.
그런데 CD 레코딩에도 문제가 있었다. CD는 무한정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무한정의 곡을 담을 수는 없었다. 한 장에 모차르트와 헨델, 하이든의 방대한 전곡을 담는다면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많이 담을 수도 없고 적게 담을 수도 없는. 그 기준을 정하지 못해 레코드 관계자들은 고민하였다.
현재의 CD는 보통 74분 정도의 분량으로 녹음된다. 이것은 고 헤르베르트 카라얀이 정한 것이라고 한다. 카라얀은 고심 끝에 베토벤 교향곡 9번의 길이가 74분인 것을 착안하여 이 정도 길이라면 다른 모든 곡들도 다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소니 레코드사에 제안하여 비로소 지금의 CD가 완성됐다고 한다.
말이 필요 없는 음악의 성인 베토벤.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 인정받고,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그의 교향곡 9번. <운명>과 더불어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합창교향곡>이다.
이렇게 유명하고 가장 훌륭한 음악이라고 다들 알고는 있지만 이 곡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의문이다.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4악장의 일부분이다. 찬양하라 노래하라 창조자의 영광을... 하며 가사가 붙여진 극히 일부분만 알 것이다.
흔히 베토벤의 음악은 어렵다고 한다. 그의 교향곡들만 염두에 두면 그렇게 여길 수도 있다. 아마 전문적인 음악가나 극소수의 마니아들이 아니라면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을 한번이라도 다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는 음악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기껏 3번이나 5번 6번 9번 정도 들었을 뿐이다. 그러고는 역시 베토벤은 어렵다고 하곤 한다.
베토벤은 어려운(?) 교향곡만 있는 게 아니다. 주옥같은 가곡들도 부지기수고,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쇼팽을 능가하는 피아노곡들도 아주 많다.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또 어떤가.
지금의 CD분량을 있게 한 교향곡 9번도 어려운 음악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4악장의 웅장한 대합창이 있는가 하면, 3악장은 사랑의 멜로디처럼 감미로운 선율로 이어진다. 또한 동화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로 시작하는 1악장의 아름다움. 과연 인류가 음악의 최고봉으로 가장 높게 평가할 만하다. 이번 기회에 나도 한번 귀 기울여 들어봐야겠다.
베토벤 교향곡 9번 1악장 O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