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조회시간에 처음 들어본 노래.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라는 이름으로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서서 교장선생님의 긴 훈화 및 이런저런 소소한 시상, 간단한 전달사항 등을 진행하는. 선생이나 아이들이 공히 싫어하던 그것.
어느 날 생뚱맞게 한 여학생이 단상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그때 처음 들은 그 노래는 <등대지기>였다. 기분이 묘했다. 아득히 몽환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요즘 시쳇말로 완전 대박이었다. 먼 바다 위에 홀로 떠서 보랏빛으로 가득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외로움 허무함 아련함.
나는 4학년이었고 소녀는 5학년이었다. 소녀라기보다는 누나였다. 국민학교 때는 한 살만 많아도 여자는 훨씬 성숙해 보였다. 교정에서 가끔 얼굴을 보기도 하는 여학생이었다. 아주 예뻤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나중에 객관적으로 돌이켜 그려 보면 그리 예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땐 참말 예뻤다.
그 예쁜 여자애가 난생 처음 들려주는 노래.
그때 막연히 집어올리던 생각. 이담에 저렇게 생긴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 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렇게 생긴 여자를 만나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여자아이를 맘속으로 좋아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와는 먼 이상형 같은 것이었다.
그날 아침 느닷없이 들은 등대지기 - 등대지기라는 제목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 는 딱 한번 들었을 뿐인데 그 멜로디가 귀에 고스란히 저장이 되었다. 가사는 모르고 허밍으로 흥얼거리곤 했다.
그보다 한참 지난 뒤에 나보다 한참 하급생인 어린 아이가 또 한번 그 노래를 불렀는데 처음의 그 감동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예쁘장하고 고운 소리로 잘 불렀는데도 말이다.
사람에게 첫 이미지라는 것은 매우 강렬한 달란트다.
또한 예술의 수준은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소비자의 몫이다. 같은 노래를 불러도 내가 선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감동은 확연히 다르다. 나카시마 미카보다 박효신이 부르는 <눈의 꽃>이 훨씬 감동인 것처럼. 취향에 따라 또는 일본 사람들은 나카시마 미카의 노래가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등대지기의 충격과 함께 그 여학생의 달란트는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름대로의 추정은 그녀는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와 대학시절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 시위를 주도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후로도 줄곧 사회운동에 종사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혀 극단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후자일 것 같은 생각이 더 짙다. 왠지 그녀는 그럴 것 같다.
양희은 : 등대지기
등대지기.
아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인가. 노랫말은 또 얼마나 절절한가.
우리는 영국민요라고 배웠다. 또는 스코트랜드 민요, 아일랜드 민요라고도 되어 있다. 명확하지 않은 의문스러움. 그리고 작사는 고은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실은 등대지기는 미국의 찬송가라고 한다. <The Golden Rul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지만 미국에서는 거의 불리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가 크게 알려졌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노랫말도 일본 사람이 붙인 가사다. 앞서 포스팅했던 <희망가>와 같은 경로로 우리나라에 건너온 케이스다. 따라서 고은이 작사를 했다는 것은 잘못된 기록이다.
작곡가 나운영의 부인인 유경손 여사가 일본어 노랫말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고 한다. 자료를 보면 일본말 가사와 우리말 가사가 거의 같다.
경로와 경위가 어쨌든 우리에게 왔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심신이 울적할 때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 신기하게도 진정되는 것 같다.
이 노래는 오카리나 음색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더욱더 처연한 그리움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제 몇 해가 지났는가. 어느 겨울 주문진 등대 아래서 이 노래를 불렀었다. 12월이었던 건 분명하다. 오랜만에 이 사진 다시 들여다보니 나 쫌 괜찮네. 역시 지저분하고 머리가 길어야 내 스타일이 나온다. 옆모습이 박효신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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