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연문화는 흥과 신명이다. 마당놀이 같이 대중 속에서 함께 즐기는 문화다. 관람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알아서 주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고.
서양의 공연문화는 상당히 근엄하다. 암묵적인 규율이 있다. 가령 연미복 등 정장차림으로 입장하고, 감동을 받아 박수 치는 것도 법도가 있어서 아무 때나 치면 안 된다. 흥이 나면 누구랄 것 없이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일어나 춤을 추는 한국의 그것과 대조적이다. 우리가 '동방예의지국'인데.
서양의 공연문화는 다분히 귀족적이고 귀족지향적이다.
음악회장엘 들어가면 확연히 그 형세가 보인다. 부자여서 돈을 많이 낸 사람은 앞자리라든가 가장 보기 좋은 자리에 앉고 부의 차등에 의해서 자리를 배분 받는다. 가난한 사람은 맨 귀퉁이나 2층 저 꼭대기에 앉는다. 평민들은 아예 그 세계를 알지도 못하고.
그 서양문화가 들어와 이제는 자연스레 우리에게도 정착이 됐다.
예전에는 A석 B석 C석이 있어 철저하게 빈부를 구분하였다. A석 사람들은 공연히 우월감을 느꼈을 테고, C석 사람들은 위화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는데 어느 때 S석이 생겼다. Special의 약자로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 즉 특석이다. 당연히 값이 비쌌고 공연히 우월감을 느끼던 A석은 뒤로 밀려났다.
그러더니 어느 때 R석이 생겼다. Royal, 즉 왕족만이 누리는 최상급 좌석이다. 스페셜한 사람들이 뒤로 밀려났다. 이것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이 R석이 점점 많아지고 객석 중앙 대부분이 R석이 되었다. 왕족만 앉는다는 자리가 객석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스페셜한 사람들은 맨 뒤 구석자리로 밀려났다.
이건 기만행위다. 왕족만이 앉을 수 있는 최고급 자리, 그래서 관람료도 엄청 비싸게 내야 하는 R석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 놓다니! 웬만한 자리는 죄다 R석이다. S석은 양 사이드나 뒷자리 구석이고, 그 옛날 우월감을 느끼던 A석은 2층 혹은 3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니 B석과 C석은 말해 무엇하랴. 결국은 입장료만 엄청 올린 치졸한 꼼수다.
그러나 R석의 꼼수도 옛일이 돼 버렸다.
일반 관객들이 최고의 자리로 인식하던 로얄석 위에 VIP석이 새로 생겼다. 왕족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이 앉는 자리다. 이 VIP석이 점점 많아지며 객석을 점령하더니 이번엔 또 VVIP석이라는 게 생겼다. 환장하겠다.
근래에는 이 위에 또다시 P석이 생겼다. 프레지던트, 혹은 프리미엄이라는 뜻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얼마 전 어떤 공연은 ‘다이아몬드 클래스(D. Class)’라는 좌석을 또 배치했다. 이 분야 종사자들이 심각하게 숙고하고 근본적인 개선이 있어야겠다.
이쯤 되면 왕족도 2층으로 올라가 앉을 판이다. 그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말이다. R이 Royal이 아닌 Regular로 전락되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말 많은 이런 폐단을 없애고자 P석과 VVIP석을 폐지하고 표준등급제와 등급당 좌석수제한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뭐 그렇더라도 별다르진 않다. 값비싼 R석이 객석의 3분의 2나 되는 황당한 좌석배치는 여전히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 이상은 아니다.
A석은 어디로 갔나. B석은? C석은? 이미 많은 프로그램에서 B와 C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예술의 전당 좌석도. 빨간색 안쪽이 다 R석이다. 결국은 관람료만 엄청 올려 놓은 셈이다.
3월의 예술의 전당 두다멜 내한공연을 어렵게 티케팅 했다. 값비싼 S석, 곧 특석인데도 거의 구석자리에 가깝다. 참내~~
겨울날 예술의 전당은 참 황량하고 삭막하다.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딱히 그럴 이유도 없는데 이 협주곡은 귀족 냄새가 난다. 아마 자동차 등 고가제품의 광고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여 그럴지도 모르겠다.
알레산드로 마르첼로 오보에 협주곡 1악장 O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