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설리숲 2014. 9. 25. 22:34

 

 화장실에 들어가니 자동센서에 의해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 이게 무슨 고기지? 아니다 이게 무슨 곡이지. 너무나 귀에 익숙한 멜로디. 브람스.

 길이란 길마다 만발하여 넘실대는 코스모스를 대할 때도 무덤덤했던 감성이 브람스를 대하자마자 솟아났다. 아, 가을이구나. 정녕 가을이 왔어.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가서 이 가을이 끝나고 첫눈 날리는 날에 돌아오면 안 될까.

 동시에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그녀의 소설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게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관심은 없었는데 브람스의 음악이 흐르는 변소에서 불현듯 돋는 독서욕이었다.

 

 시내로 들어갔다. 작은 도시이니 중심가로 가면 서점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번 같은 곳을 돌았는데도 서점 간판을 찾을 수가 없다. 어둠이 깔린 뒤였다. 여기 서점이 어디에 있어요? 30대쯤 돼 보이는 남자에게 물었더니 모른다 한다. 두 세 번을 더 물어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다. 아하, 요즘 사람들은 책을 별로 안 읽는다 하니 서점 따위는 잘 모르겠구나.

 그렇담 이번엔 사람을 가려 지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골랐다. 좀더 젊은 아가씨였다. 여기 서점이 어디 있어요? 전 여기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몰라요.

 그래서 이번엔 아예 어린 학생을 물색했다. 남자 아이들이 둘 마주오기에 여기 서점이 어디 있어요? 했더니 즈들끼리 그런다. 너 알아? 나도 몰라.

 제기랄 너거들 학생 맞아? 담배나 피지 말고 공부 좀 해 짜식들아.

 이번엔 아베크 한 쌍을 붙잡고 물었다. 아예 기대도 하지 않았건만 아가씨가 의외로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저기 대학로마트 보이잖아요?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아이비케이가 있는데요 그 앞으로 해서 쭉 가면 서점 있어요. 아까 내가 갔던 곳이다. 그녀의 말대로 잘 찾아가긴 했는데 도무지 서점 간판이 보이질 않는다. 또 도움이 필요했다. 지나가는 여고생들은 많았지만 첨부터 그네들은 포기했었다. 세상이 하 어수선하고 이상한 세태라 어린 여학생들에게 말걸기가 두렵다. 혹 경계하는 눈빛이라도 보이면 나는 몹시 기분이 나쁠 것이니까.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어쩌다 이리 됐는지.

 그러나 나는 사강의 소설을 읽고 싶었다. 혼자는 안 되고 둘이 같이 있는 여학생들을 선택해 조심스레 물었다. 물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졸밋거리던지.

 저기요. 여자 아이들은 내 불안함과는 사뭇 다르게 발랄하게 가르쳐준다. 어디? 저 모퉁이 돌아서 어쩌구저쩌구 하고는 먼저 앞서 간다. 가르쳐 준대로 따라가니 조그만 서점 간판이 보인다. 내게 길을 가르쳐 준 조금 전의 여자아이들이서점 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즈그들도 여기 올 거면서 그냥 따라오라 하면 되지 굳이 손가락질 하며 가르쳐 줄 건 뭐람, 망할 년들!

 

 모차르트는 현란하고 슈베르트는 우울하고 비발디는 댄디하고. 뭐 이런 식으로 음악가의 성향을 정의하는데 그렇다면 브람스는?

 그는 낭만주의시대에 살면서 철저하게 고전주의를 고집하려 했던 음악가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보다 넓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특이한 성향의 사람이다. 악상이 유려하고 감미롭다. 서양보다는 동양인들의 기호에 맞는 음악이다. 물론 내 주관적인 느낌이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내용은 나이 많은 여자와 젊은 남자의 연애 이야기로 로망과 현실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은 처음으로 돌아가 소설의 첫 장이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발단과 전환은 젊은 남자의 음악회 초대권과 함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음악회에 갑시다, 라는 편지로 인해서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프랑스 사람들은 브람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의 의향을 먼저 배려하는 성의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한다면 개고기 먹을 줄 알아요? 하는 식이다. 비유를 흉측하게 개고기로 한 건 좀 심하지만 한국인의 개고기문화를 가장 비하하고 혐오하는 게 프랑스라 한번 엿먹여 본 거다.

 여자 폴라는 남자 시몽보다 14살 많은 연상녀인데 브람스도 14살이 더 많은 클라라 슈만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재차 각인시키고 있다. 일종의 패러디일 수도 있겠다. 사강 자신의 욕망에 대한 대리만족의 농후도 짙어 보인다.

 어쨌든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사랑 어느 것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은 걸로 보인다. 속된 말로 하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그게 그거라는 것. 결국은 내 행복은 오롯이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뭐 이런 걸까.

 

 사강의 이 소설은 1961년 영화로 만들어져 프랑스에서는 원제 그대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미국에서는 <굿바이 어게인>, 한국에서는 <이수>라는 생뚱맞은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당연히 영화 전편에 브람스의 음악이 흐른다. 교향곡 3번 3악장.

 영화는 보지 못 했지만 이 음악의 감미로움이란!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브람스. 진정 아름답고 감미롭고 세련된 경험이다.

 들꽃들에 대한 햇빛의 온화하고 밝은 사랑.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가을이다. 젠장...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O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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